등록 : 2008.07.25 19:37
수정 : 2008.07.25 19:37
사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의 문제점을 다뤄야 할 국정조사가 <문화방송> ‘피디(PD)수첩’을 다루는 조사로 변질하고 있다. 한나라당 국정조사 특위 위원들이 문화방송에 피디수첩 취재자료 제출을 요구하는가 하면, 피디수첩 관계자들을 국정조사 증인으로 채택하려 애쓰고 있다. “피디수첩 자체는 국정조사 주제가 아니지만, 피디수첩의 광우병 괴담 확산 문제는 국정조사에서 다룰 수 있다”는 기이한 논리까지 내세운다.
이번 국정조사는 지난 4월의 한-미 쇠고기 수입 협상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참담한 실패작이었다는 반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요구나 유럽·일본 사례와는 너무 동떨어진 내용으로 협상이 타결됐고, 그 결과 서울 중심가에선 수만에서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두 달 넘게 촛불시위를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했고 청와대 비서실이 전면 개편됐다. 정부가 추가협상에 나서긴 했지만, 첫단추를 잘못 끼웠기에 국민 불안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런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온 협상을 냉철하게 따져보고 잘잘못을 규명하는 건, 책임을 묻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계속될 국제 통상협상의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서도 절실한 일이다. 그래서 국정조사의 정식 명칭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개정 관련 한-미 기술협의의 과정 및 협정 내용의 실태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로 길게 달았다.
하지만 막상 조사가 시작되자 한나라당은 ‘협상과정 및 내용의 실태 규명’은 뒷전으로 미룬 채 한-미 쇠고기 협상의 문제점을 처음 이슈화했던 피디수첩 보도 내용을 따지는 데만 온힘을 쏟고 있다. 한나라당의 이런 행동은, 외교통상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들이 쇠고기 협상 과정에 관한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일부러 늦추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협상의 문제점이 드러나는 걸 최대한 감추면서, 오히려 촛불집회를 ‘괴담에 놀아난 군중심리’ 정도로 헐뜯고 비난하려는 게 정부·여당의 속마음이라 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정부에서 비슷한 정책 실패가 자꾸 되풀이되는 건, 과거의 잘못이 미래의 교훈으로 남지 않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지금 눈앞의 정치적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 국정조사의 목적은 정부 통상협상의 문제점을 세밀하게 가려내는 일이다. 한나라당은 국정조사의 본래 취지를 왜곡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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