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27 20:19
수정 : 2008.07.27 20:19
사설
미국산 쇠고기 파동, 중국과의 한-미 동맹 논란, 독도 문제, 아세안지역포럼 의장성명 수정 파동 …. 이 정부가 들어선 뒤 국제관계에서 국가의 위신을 실추시킨 사례를 꼽자니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겨우 다섯 달 만에 한국 외교의 밑바닥이 다 드러났다. 그렇게 강조하던 4강 외교는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됐고, 아세안지역포럼에서는 이미 발표된 의장성명을 뒤늦게 수정해 달라고 해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이런 사태가 되풀이되는 것은 대외정책과 관련한 철학과 전략 및 시스템의 부재 탓이다. 남북 관련 문제를 국제적인 장에서 언급할 때는 남북관계에 대한 전략적 비전에 바탕을 두어야 하며 그 전략적 비전은 정부 안에서 공유돼야 한다.
그러나 이 정부에는 남북관계에 관한 일관된 비전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 북의 굴복을 끌어낼 수 있을 듯이 강경론을 외쳤다. 그러다 북한 핵문제가 해결 기조로 들어서자 금강산 피격사건이 일어났음에도 조건 없는 대화를 들고 나왔다. 피격사건에 대한 현지조사 요구가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끝나자 아세안지역포럼에서 의장성명에 이를 포함해 ‘의제화’함으로써 북을 압박하려 했다. 무엇이 이 정부의 남북관계에 대한 비전이고 전략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통일부 장관조차 남북간에 해결할 문제지 국제화시킬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이왕 의제화 전략을 세웠으면 제대로 수행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나 북한의 대응도, 의장국의 움직임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뒤늦게 청와대가 문제를 제기하자 허둥지둥 성명 문안을 수정하는 외교적 파행을 연출했다. 현장 외교관들의 한심한 책임의식과 더불어 대외정책 전체를 통괄하는 시스템이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사태로 우리 외교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대북 관계 개선 가능성도 한층 멀어졌다. 한편에선 10·4 선언 이행방안을 논의하자면서 다른 한편에선 ‘10·4 선언에 기반한 남북대화 지지’란 문구를 삭제하기 위해 파행도 마다지 않으니 국제사회가 어떻게 이 정부를 믿고 상대할 수 있겠는가? 정부는 이런 소동을 빚은 외교안보 라인에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근본에서부터 대외정책을 재정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진정 북한과 대화할 의지가 있다면 이 해프닝이 남북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님을 밝히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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