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29 20:29
수정 : 2008.07.29 20:29
사설
정부가 지난 25일 발표된 아세안지역포럼 의장성명에서 10·4 남북 정상선언 이행 관련 부분을 빼 달라고 요구해 망신을 당하더니 비동맹운동 장관급 회의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란 테헤란에서 열리는 이 회의는 오늘 일정을 마치면서 합의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북한은 이 회의 회원국이지만 한국은 게스트 국가여서 회의 참여가 제한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외교부 관리를 보내 합의문에 10·4 선언 이행 지지 표현이 담기는 것을 막으려 애쓰고 있다.
이런 모습은 냉전 시절에 횡행한 소모적 대결 외교의 재판이라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다. 이런 양상이 되풀이될 경우 남북이 치러야 할 대가는 갈수록 커질 것이다. 여기까지 온 데는 남쪽에 훨씬 큰 책임이 있다. 국제사회 또한 우리 정부에 호의적이지 않다. 여러 해 동안 한국 외교에서는 없었던 국제고립의 현실화다.
주된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정부의 10·4 선언 무시에 있다. 국제사회는 남북 정상이 직접 협상하고 서명한 이 선언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왔다. 유엔 총회는 지난해 10월31일 이 선언을 환영·지지하고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정부가 이 선언 지지 움직임을 막으려 할수록 국제고립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낭비외교, 헛다리 외교를 하고 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북쪽이 ‘10·4 선언에 기초한 남북대화’라는 표현을 선전 자료로 활용할 가능성이 커서 아세안지역포럼 의장성명에서 빼 달라고 요구했다며 외교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10·4 선언 이행 확인을 선전 수단 정도로 여기는 발상이다. ‘10·4 선언 무시라는 정부 정책기조에 따라 행동했는데 무엇이 잘못이냐’는 항변이기도 하다. 정부의 이런 모습들이 남북 관계를 악화시키고 국제사회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
해법은 간단하다. 10·4 선언 이행 의지를 분명히하고 선언에 규정된 대로 남북 대화를 복원하면 된다.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금강산 사건과 같은 돌발사태를 풀기가 쉬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독도 문제 등에서도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곧, 남북 관계는 모든 외교·안보 사안을 뒷받침하는 토대다. 그리고 지금 남북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10·4 선언 실천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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