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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31 20:06 수정 : 2008.07.31 20:06

사설

또 한 분의 문학적 스승이 우리 곁을 떠났다. 순교자처럼 작품에 매달려(평론가 김현) 영혼의 내시경(권오룡 한국교원대 교수)과도 같은 소설을 써 온 사람, 그의 글길은 가장 진실한 영혼의 궤적(우찬제 서강대 교수)이었다는 사람, 그래서 문인들에겐 희망이자 넘어설 수 없는 절망(이승우)이었다는 사람 이청준이다.

그는 40년을 한 번도 곁눈질하지 않고 오로지 문학 한길만 걸어왔다. 돈도 구하지 않았고, 상도 명예도 넘보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인간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이웃의 고통을 더 따듯하게 감싸 안았고, 공동체의 모순에 더 치열하게 천착할 수 있었다. 대하소설 하나 없이 무려 24종 25권의 전집 외에 5권의 작품집을 더 남긴 것은 그 결실이겠다.

후배 문인들에게 그는, 삶도 문학도 모두 닮고 싶은 어른이었다. 그만큼 그의 삶과 문학은 깊고도 넓었다. 그 깊이와 폭으로 그는 삶의 근원적인 부조리에서부터 권력의 억압과 자유, 종교적 구원에서부터 민족적 한의 정서, 지식인의 고뇌에서부터 신화적 상상력과 예술혼에 이르기까지 삶의 전영역을 종횡무진 포섭했다. 가장 빛나는 지성적 작가(우찬제 교수)이면서도, 세모시처럼 여리고 순백한 서정을 풀어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높은 품격 속에서도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작가주의 감독들이 그의 소설에 특히 주목한 것은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편제> <천년학>(선학동 나그네) <밀양>(벌레이야기) <이어도> <축제> <석화촌> 등은 영화로 다시 탄생한 그의 작품이다. 이 가운데 밀양은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서편제는 상하이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는 등 국제적인 공감도 얻었다.

이제 큰 별은 졌다. 누가 감히 그 자리를 대신하겠다고 할 수 있을까. 다만, 그가 남긴 작품으로 그 빛을 되살릴 뿐. 그의 부고를 접한 임권택 감독은 그저 ‘가슴이 아프다’ ‘아무 말도 못하겠다’며 혼비백산했다고 한다. 오늘 우리도 말을 잊자. 학처럼 청산도 비껴 날아간 그를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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