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01 19:04
수정 : 2008.08.01 19:04
사설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의 사촌언니가 어제 구속됐다.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게 해 주겠다면서 30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다. 사촌언니 김옥희씨는 이 중 25억원을 돌려줬고 공천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지만 의혹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연줄을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에선 역대 어느 정권도 친인척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대개 정권 말기 들어 사건이 터지는 게 일반적이다. 정권 초기엔 그래도 도덕성과 원칙을 내세우며 권력 핵심부는 물론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도 나름으로 조심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에선 그마저도 허물어진 것 같다. 한나라당 서울시의회 의장은 의원들에게 돈을 돌리고 대통령 부인의 사촌언니는 거액을 챙기니, 정권 출범과 함께 집권세력 전체가 총체적인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에 빠진 셈이다. 이미 여러 분야의 국정 난맥으로 신뢰를 잃은 이 정권에 친인척 비리까지 터졌으니, 국민으로선 어이가 없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는 검찰 수사를 보면 사건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날지 깊은 의문이 든다. 이 사건의 본질은, 이명박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는 김종원 서울 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이 김옥희씨에게 비례대표 공천을 부탁하며 30억원을 준 것이다. 정당 사정을 잘 아는 김 이사장이 단순히 김씨의 감언에 속아 거액을 줬다고 보기는 상식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검찰은 김옥희씨가 김윤옥씨나 다른 여권 고위 인사에게 공천 청탁을 했는지, 김 이사장이 이와는 별도로 다른 한나라당 인사들에게 로비를 한 건 없는지, 김옥희씨가 받은 돈의 행방은 어디로 갔는지 등을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수사 칼날을 청와대뿐 아니라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과정 전반으로 겨누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를 확대하는 데 소극적이다. 단순 사기사건으로 규정해 정치적 파문을 줄이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과거 정권들을 보면, 친인척 비리와 함께 결정적으로 레임덕으로 빠져든 게 우리 정치의 경험이다. 아직 출범 초기인 이 정권의 앞날이 더욱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는 연유다. 이명박 정권이 살려면 다른 도리가 없다. 검찰은 이 사건을 뿌리까지 파헤쳐, 관련된 사람에겐 누구라도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사건을 축소하려다 정권 신뢰가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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