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03 21:51
수정 : 2008.08.03 21:51
사설
최근 경찰의 행보가 이상하다. 엄정한 법 질서 확립을 강조하는 것이야 본연의 업무라고 할 수 있지만, 촛불집회 대응 조처가 지나치게 강경 외길이다.
경찰 기동대 투입에 이어 최루액 사용을 거듭 공언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은 지난주말 촛불집회를 앞두고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폭우로 집회 참가자들이 자진 해산하는 바람에 그저께는 나오지 않았지만, 경찰의 분위기로 볼 때 내일로 예정된 촛불집회 때는 최루액이 실제로 사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최루 장비는 1998년 9월 만도기계 파업 때 사용된 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시위 현장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동안 여러 어려운 고비를 거치면서도, 지난 10년 동안 경찰은 스스로 정한 ‘무최루탄’ 원칙을 지켜 왔다. 그런 노력의 결과 시위양태도 ‘시위문화’로 일컬을 만큼 수준 높게 바뀌었다. 특히 지난 5월부터 계속되고 있는 촛불집회는 평화적 시위의 새로운 전형을 창조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부 격한 행동이 있기도 했지만, 시민들 스스로가 비폭력을 외치면서 평화 기조를 잘 유지해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제 와서 최루 무기를 사용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느닷없다. 강경 진압과 과격 시위의 악순환을 다시 부를 수 있는 어리석은 조처다.
일부에서는 경찰의 방침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방한과 연관시키고 있다. 촛불집회 횟수나 참가자가 그동안 줄고 있는 상황인데도 최루액 사용 운운하고 있으니 사실 이것 빼고는 달리 이유를 찾기도 어렵다. 그러나, 외국 대통령에게 잘보이려고 최루무기를 10년 만에 꺼내 자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강압적으로 누른다면 그것이야말로 국제적인 웃음거리다.
얼마 전 서울경찰청이 촛불집회 주최 쪽을 상대로 3억3천여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도 어처구니없다. 정부가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애초 막았기 때문에 벌어진 충돌의 책임을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떠넘기겠다는 것은 앞뒤가 어긋난 발상이다. 경찰 방식대로라면 광우병 쇠고기의 무분별한 개방으로 국민에게 입힌 정신적 피해는 어떻게 배상할 것인가.
국민과 대결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촛불집회의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집회 현장에서의 충돌만 부추켜 불상사를 부를 가능성이 높다. 경찰의 냉정한 대응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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