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05 21:31
수정 : 2008.08.05 23:00
사설
시나리오 치고도 매우 정교하다. 검찰은 그저께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의 출국을 금지했으며, 감사원은 어제 감사위원회를 열어 정 사장의 해임을 요구했다. 게다가 한국방송 이사회는 애초 일정을 훨씬 앞당겨 내일 임시회의를 계획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선 정 사장 해임 권고안이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이 두 기관의 ‘요구’와 ‘건의’를 받아들여 정 사장을 해임하는 일만 남았다. 이 대통령이 8일 베이징으로 출국하기 전에 끝낼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하다. 앞으로 한 달 가량은 온국민의 귀와 눈이 올림픽에 쏠릴 테니 ‘정연주 몰아내기’에 이보다 더 좋은 때가 없다. 검찰과 감사원, 한국방송 이사회 등의 움직임이 척척 맞아떨어진 이유가 이제야 분명해졌다. ‘보이지 않는 손’이 어디인지도 확실해졌다.
그러나 검찰과 감사원 등은 정치적 독립성을 팽개치고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쿠데타’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데 대한 역사적인 책임을 결코 벗지 못할 것이다. 먼저, 감사원의 이번 감사는 ‘청부 감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뉴라이트 전국연합 등 친정부 보수단체의 국민감사 청구를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했지만, 실제로는 여권의 요구대로 움직였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통상 넉 달 이상 걸리는 것을 한국방송의 경우 55일 만에 해치우고, 감사위원회 일정을 앞당긴 것은 청와대의 ‘일정’에 맞추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더구나 개인 비리 등 부정행위가 없음이 밝혀졌는데도 사장 해임 요구라는 중징계 처분을 의결한 것은 감사원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보기 어렵다.
검찰 역시 방송 장악을 위한 청부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끝까지 자초하고 있다. 누가 봐도 도주 우려가 없는 정 사장을 느닷없이 출국금지한 것은 한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정 사장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을 받아 각국 정상들과의 공식 오찬 행사 등에 참석할 예정이었다고 하니, 검찰의 조처는 외교적 결례이자 국제적인 망신이다. 그동안 비리 경제인 등에 대해서는 출국을 허용했던 전례와도 어긋난다. 이러니 정치 검찰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말로만 법질서 확립이니 선진화니 운운하지 말고, 민주주의를 20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방송장악 음모를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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