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06 19:04
수정 : 2008.08.06 19:04
사설
새 정부 출범 이후 세 번째 한-미 정상회담이 어제 서울에서 열렸다. 공동성명을 보면 논란이 될 합의는 피하려 한 흔적이 뚜렷하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홍역을 치른데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임기가 몇 달 남지 않은 탓이 클 것이다. 그럼에도, 회담 내용은 한국의 대미 의존 구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북 정책과 관련한 정부의 이중적 태도다. 공동성명에는 “북한 주민의 경제적 여건 개선을 지원하고 남북한 간 상생과 공영의 길을 제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통일의 길을 열어나가고자 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구상”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거짓에 가깝다. 이 대통령은 상생과 공영의 길을 추구하기는커녕 10·4 정상선언과 6·15 공동선언을 무시함으로써 남북 관계를 크게 후퇴시켰기 때문이다. 성명은 이 구상과 최근 이 대통령의 남북 대화 재개 제의를 부시 대통령이 전폭적으로 지지했다고 하고 있다. 마치 이 대통령이 전향적 대북 정책을 펴 왔고 미국은 이를 지지하는 것처럼 왜곡한 것이다. 정부는 미국의 지지에 매달리기에 앞서 실제 대북 정책의 방향부터 제대로 설정하기 바란다.
“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북한 내 인권상황 개선의 의미있는 진전이 이뤄져야 한다”는 성명 내용이 적절한지도 의문이다.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지속적 접근이 이뤄져야 하지만, 이 문제를 자의적으로 판단해 북-미 관계 진전을 막으려는 미국 내 강경파의 시도에 한국이 동조할 이유는 없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과 관련해 미국에 대북 압박을 요청하고 이를 성명에 포함한 것도 남북 관계의 자율성을 위축시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최근 아세안지역포럼 의장성명 파문에서 드러났듯이 이런 시도는 소모적 남북 대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한국의 비군사적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아프가니스탄 재파병과 이라크 파병 연장은 있을 수 없음을 분명히해야 할 것이다. 외교·안보 정책에서 대미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반대급부도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추구하는 한-미 전략동맹은 그래서 위험하다. 남북 관계까지 미국에 기대는 지금의 구도는 남북은 물론 미국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의 각성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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