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08 19:18
수정 : 2008.08.08 19:18
사설
한승수 국무총리가 어제 국회에서 열린 쇠고기 국정조사 특위에 아무런 예고 없이 불참했다. 총리실은 “실무적 착오”라고 주장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대통령이 여야 합의를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니, 그 밑의 국무총리는 한술 더 떠 국회 출석 의무마저 아예 무시해 버렸다.
한 총리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지금까지 정치적 생명을 이어온 사람이다.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하다’는 비판을 받긴 하지만, 누구와도 척을 지지 않고 몸을 굽히는 처세술이 5공화국 이후 정권이 여러 번 바뀌어도 줄곧 정부 요직에 살아있게 한 비결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초대 총리로 발탁된 뒤에도 예의 그 모습을 잘 지켜나갔다. 대통령이 ‘총리는 자원외교에 힘쓰라’고 한마디 하자, 중앙아시아 등지를 돌며 성과도 불분명한 자원외교에 온힘을 쏟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내각 총사퇴라는 정치적 위기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뒤, ‘총리가 유약하다’는 비판을 받자 이젠 정권 안보의 최전선에 서서 야당·시민단체와 싸우는 데 몸을 던지고 있다.
국무총리가 소신 있게 행동하는 건 중요하지만, ‘공직자의 소신’이란 국민의 뜻을 최우선에 둘 때 비로소 빛이 나는 법이다. 독선적인 대통령 밑에서 그 독선을 따라 배우며 국회와 국민을 상대로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건 소신이 아닌, 굴신(屈身)의 가장 저급한 행태일 뿐이다. 이건 한 총리 본래의 스타일과도 영 어울리지 않는다. 권력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인간적으론 연민마저 든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 불리는 국무총리는 ‘만인’을 앞에 둬야지 ‘일인’을 앞에 둬선 안 된다. 한 총리는 정권의 악역까지 앞장서 맡으려 하지 말고, 국민의 뜻을 제대로 읽어 대통령에게 정확히 전하고 정책으로 구현하는 데 힘을 쏟길 바란다. 그게 나라도 살고 한 총리도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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