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10 21:58
수정 : 2008.08.10 21:58
사설
최악의 폭염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박태환이 남자 수영 자유형 400m에서 우승한 때도, 최민호가 남자 유도 60㎏급에서 상대 선수를 차례로 매트에 내리꽂던 때도 그랬다. 여자 핸드볼 팀이 세계 최강 러시아를 상대로 드라마를 연출하고, 여자 농구팀이 연장 접전 끝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둘 때도 폭염은 한반도를 삼키고 있었다.
이들의 승리와 선전이 걷어차 버린 것은 폭염만이 아니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살림살이,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폭정 등으로 말미암아 최고치에 이른 시름과 불쾌지수도 잠시나마 함께 날려버렸다. 특히 그것은 오로지 피와 땀 그리고 불굴의 정신력으로 일궈낸 것이기에, 폭력·협박·속임수·사기·분열책동 따위에 진저리가 난 국민에게 작지만 소중한 희망을 주기에도 충분했다.
박태환 선수의 수영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 획득은 특히 효과 만점이었다. 박태환은 결승전 출전 선수 가운데 나이가 어린 선수였다. 주요 경쟁자 중에서도 키나 몸무게 등 신체 조건이 가장 열세였다. 국민이 그에게 거는 기대의 무게가 얼마나 컸던지 그는 전날 1시간 자는 둥 마는 둥 밤잠을 설칠 정도로 마음이 여린 젊은이였다. 그런 우리의 동생이, 상할 대로 상한 국민의 마음을 활짝 펴주었으니 이보다 더 고맙고 장한 일이 어디 있을까.
아테네올림픽 동메달리스트였던 최민호의 금메달은 이와는 다른 측면에서 값진 것이었다. 같은 날 사격에서 은메달을 따고도 ‘금메달을 못 따 죄송하다’고 한 진종오 선수의 말처럼 우리 사회는 오로지 1등에만 열광한다. 최 선수는 지난 4년 그 속에서 외롭고 힘든 삶을 보내야 했다. 이를 극복한 그의 승리는 1등보다 더 값진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오로지 불굴의 정신력으로 세계 최강에 맞선 여자 핸드볼 팀은 스포츠가 쓸 수 있는 최상의 감동적 드라마를 다시 한 번 펼쳤다. 선수단은 평균 나이 33살이었다.
올림픽은 빠르고 높고 강한 것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체와 함께 지와 덕의 함양을 통한 인간 완성이야말로 올림픽의 이상이다. 우리 선수들은 이런 이상을 이번에 유감없이 보여줬다. 이들의 분투가 우리에게 자정 효과 이상으로 감동과 희망의 메시지까지 던져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특히 우리 현실은 폭력과 억압, 반칙과 사기가 판을 치고 있는 터이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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