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10 21:59
수정 : 2008.08.10 21:59
사설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 주변 인물들이 국방부에 장비를 납품하도록 해주겠다며 업자로부터 수억원을 받아 여권에서 로비를 벌인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대통령 사촌처형이 국회의원 공천을 해주겠다며 수십억원을 받아 챙긴 사건도 아직 정확한 실체를 드러내지 못한 터에, 이제 측근 비리까지 터진 것이다. 집권 몇 달 만에 집권세력에서 이런 비리가 잇따르는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사건 관련자들의 면면이나 경위를 살펴보면, 이번 일이 실패한 사기 사건일 뿐이라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섣부른 변명으로 들린다. 사건 관련자는 5선 의원 출신인 유한열 한나라당 상임고문을 비롯해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 간부, 이명박 대통령후보 정책특보 등이다. 다른 한 관련자도, 한때 이 대통령 자신이 총재를 지냈고 지금은 대통령 부인의 조카가 총재를 맡은 단체의 부총재다. 모두 권력 핵심에 가까운 사람들로 비친다. 이런 이들이 한꺼번에 관련된 일을 단순 사기 사건 따위로 미리부터 축소하려 해선 안 된다.
로비 대상이라는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과 공성진 한나라당 최고위원 등의 행동도 석연치 않다. 국회 국방위원이던 공 의원은 지난 2월 유 고문의 청탁을 받은 뒤 사정을 알아본다며 국방부 차관에게 전화를 걸고 비서를 국방부에 보내기까지 했다. 의정활동을 위한 것일 수 있겠지만, 정말 다른 이유는 없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지난 1월 대통령직인수위 근무 때 사건 관련자들을 만나 청탁을 들었던 맹 수석도 8월 초 언론의 취재가 본격화하고서야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몇 달 전부터 이 사건을 놓고 진정서가 오가는 등 문제가 불거졌음에도 이를 숨기려 했던 건 아닌지 의심된다.
사건 관련자들은 “이제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았으니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다. 이들만 그러고 다니진 않았을 게다. 한나라당이나 청와대에 그런 분위기가 팽배한 탓에 법 규정을 무시한 공기업 낙하산 인사 등이 버젓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런 풍토에선 금품수수, 로비나 청탁 따위를 아무렇지 않게 여길 수 있다. 급기야 이번과 같은 비리들이 잇따르게 된다. 이명박 정부가 친인척·측근 비리를 어물쩍 넘기려 한다면 그런 풍조는 더 퍼질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는 게 이런 식의 아귀다툼을 하려는 게 아니라면, 엄정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마땅하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