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11 20:14
수정 : 2008.08.11 20:14
사설
불교계가 정부의 종교 편향에 맞서기로 결의한 어제,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방송 사장 해임안에 서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케이비에스도 이제 거듭나야 한다.” 이 짧은 논평을 하면서도 그는 종교적으로 매우 민감한 낱말을 썼다.
국어사전를 보면 ‘거듭나다’는 “원죄 때문에 죽었던 영이 예수를 믿음으로 해서 영적으로 다시 새사람이 되다”라는 뜻의 기독교 용어다. 이 대통령은 불교계가 차별 문제로 폭발 직전인 상황에서도, 자신의 종교적 색채를 확연히 드러내는 낱말을 공식 논평에 쓴 것이다. 의식적으로 쓴 것이 아니길 바라지만, 이것이 다른 종교인에게 이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어떤 인식을 심어줄지는 자명하다.
불교계는 어제 정부의 ‘종교 편향을 바로잡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갔다. 세속사와 일정한 거리를 두어온 불교계가 범종파 차원에서 공동행동을 펼쳐나가기로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개신교 장로인 이 대통령이 불교계를 얼마나 차별했는지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정부 들어선 뒤 불교계가 느껴온 피해의식과 위기감이 그만큼 컸던 까닭일 것이다. 이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의원까지도 ‘충격적이라는’ 편향 사례를 거론하며 한나라당 지도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할 정도였으니, 이것이 오해만은 아닐 것이다.
종교 편향을 의심할 만한 일들은 이 대통령의 해명 이후에도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포항시를 기독교 도시로 만드는 데 예산 1%를 쓰겠다고 다짐했던 전 포항시장이 중앙공무원교육원장에 임명된 것이나, 대중교통 지리서비스에 이어 교육지리 정보서비스에서도 사찰이 몽땅 빠져버린 것은 이 정부의 편향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한 일이다. 지난 7월30일 서울 교육감 선거 때는, 교회를 대거 투표소로 이용하는 바람에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교회에서 투표하기도 했다.
다종교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종교간 평화와 국민통합은 정치가 추구해야 할 지고의 가치 가운데 하나다. 헌법에 굳이 종교 차별 금지, 정치와 종교 분리 조항을 두면서까지 각별한 주의를 요구한 것은 이런 까닭일 터이다. 여기에 새로운 입법을 통해 종교 차별을 금지하고 처벌 조항까지 두는 건 사실 문명 국가로선 창피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차별적 발상과 행태가 되풀이된다면 체면을 따질 일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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