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12 21:07
수정 : 2008.08.14 01:45
사설
지난 11일부터 발효할 수 있었던 미국의 대북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가 미뤄졌다. 지난 4월 북-미 싱가포르 합의 이후 비교적 순조롭던 핵 협상이 다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형국이다. 이번 일로 6자 회담 전체가 동력을 잃는 일이 없도록 참가국 모두 노력할 때다.
미국 국무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력한 검증체계를 갖는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핵 물질 및 프로그램에 대한 검증체계에 합의할 때까지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안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검증체계 대상에 플루토늄뿐만 아니라 우라늄 핵 프로그램과 핵 확산까지 포함된다는 데 있다. 북한의 핵 신고를 다룬 싱가포르합의에서, 미국은 ‘현재의 문제’인 플루토늄에 집중하고 ‘과거의 문제’이자 실체가 불분명한 우라늄 핵 프로그램과 핵 확산은 뒤로 미뤘다. 그런데 이후 이 합의와 관련해 국내에서 비판 목소리가 커지자 미국 정부는 여러 검증체계를 함께 요구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북한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를 대북 적대정책 변화의 시금석으로 여긴다. 따라서 테러지원국 해제는 북-미 사이 신뢰 수준을 높여 핵 폐기 단계로 진입시키는 열쇠 구실을 한다. 그런데 지금 북한은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고 명분을 쌓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실제로 과거 이라크 핵 사찰에서 봤듯이, 북한 내 모든 핵시설을 다 보여주더라도 우라늄 핵 프로그램과 핵 확산 시도가 없었음을 입증하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을 돌파할 해결책으로, 미국 외교협회 개리 새모어 부회장의 제안이 주목된다. 그의 제안은 핵 신고 협상 때처럼 검증체계도 플루토늄과 그 외의 것으로 나누는 것을 뼈대로 한다. 플루토늄 검증체계에 합의하는 대로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고 다른 문제는 이후에 다루자는 얘기다.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지키면서 검증 협상을 실질적으로 진전시킬 수 있는 현실적 안이다.
검증체계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모든 의혹을 한꺼번에 푸는 방법은 없다. 단계적 검증과 상응 조처로 신뢰를 쌓아가야 할 까닭이다. 미국과 북한은 다시 진지하게 마주앉아야 한다. 과거 몇 차례 고비 때 밀도 있는 협상으로 해법을 만들어낸 경험이 지금 상황을 푸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정부 역시 무기력한 모습에서 벗어나 실질적 역할을 강화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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