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14 21:11
수정 : 2008.08.14 21:11
사설
새로운 갑자(甲子)의 새 출발을 앞두고 설레야 할 우리의 마음은 어둡기만 하다. 지난 60년 동안 정치적 폭정과 역사적 시련 속에서 이땅의 민초들이 이뤄낸 빛나는 역사가 일거에 부정된다. 폭정과 억압의 주체들이 신화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민초들은 다시 억압과 굴종을 요구받는, 역사적 퇴행이 전개되고 있는 까닭이다.
60년 전 2월 김구 선생은 ‘3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성명을 냈다.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않겠다.” 남북이 제각각 단독정부를 수립하려는 상황 속에서 단일 정부 수립을 촉구하는 단장의 절규였다. 그러나 남북의 ‘건국’ 주역들은 제각각 반쪽 정부를 세웠다. 그러나 이들조차 반쪽 정부라는 문제의식과 그로 말미암은 자괴감을 숨길 수 없었다. 이승만은 연호를 임정 출범을 기점으로 삼아 대한민국 30년이라 했고, 정부수립을 따로 기념하지 않고 광복절에 포함해 행사를 치렀다. ‘오늘은 정부수립 내일은 남북통일’이라는 정부 공식표어처럼, 당시 주역들은 통일 정부를 준비하는 미완의 정부임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60년 뒤, 이명박 정부는 엉뚱하게 건국 담론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으로 새로운 갑자를 시작하고 있다. 임정에서 탄핵당하고, 4·19 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자유와 평등과 박애 등 민주적 가치를 유린한 박정희를 산업화의 아버지로 세우려는 것이다. 두 정권은 친미와 반공 노선을 앞세워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 기본권을 박탈하고, 무제한의 노동 착취를 할 수 있었다.
이 정부가 건국 담론을 꺼내든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거짓된 영웅신화와 반공 국시의 복권을 통해, 다시금 반민주적 억압과 신자유주의의 착취 구조를 부활하려는 것이다. 이미 지난 20년 동안 쌓아올린 민주적 제도는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자본과 기업한텐 무제한의 자유가 주어지고, 노동과 민생은 급속히 피폐해진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노력은 실종되고, 대결과 긴장만이 높아만 간다. 남북선수단 공동입장이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무산된 것은 상징적이다.
정부가 갈 길 역사에서 찾기를
하지만, 지난 6개월의 짧은 실험을 통해 이런 시도의 시대착오성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친미 편향은 안으로는 검역 주권과 축산농가의 생존권의 포기로, 대외적으로는 주변 열강과의 외교적 파탄으로 나타났다. 경제정책은 오히려 기업과 시장으로부터 외면받고 있으며, 시장주의적 사회정책은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마저 흔들어놓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7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자신의 역사를 부정하는 국민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거짓된 신화와 역사를 구별하지 못한다. 역사 앞에서는 겸손해야 하지만, 거짓된 신화는 깨야 한다. 60년 전 이른바 건국 세력이 가졌던 자괴감을 기억하길 바란다. 거기서 이 정부가 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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