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22 19:44
수정 : 2008.08.22 19:44
사설
청와대가 <한국방송>(KBS) 사태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음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지난 일요일 정정길 대통령실장 등 정권 핵심인사들이 유재천 한국방송 이사장과 유력한 차기 사장 후보인 김은구 전 한국방송 이사 등을 은밀히 만나 대책을 논의했다는 건, 이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고자 얼마나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1일 위법 논란 속에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을 해임하면서 “한국방송도 이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거듭나는 방송’을 위해 이 정권이 한 일이 고작 대책회의를 통해 새 사장 인선에 개입한 것이다. 그러면서 겉으론 방송의 공공성과 정치적 독립을 강조했으니, 그 언행의 불일치에 국민들은 아연할 수밖에 없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이 정권 핵심 인사들의 거짓말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사장 선임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누누이 주장해 왔다. 청와대 개입을 지적하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곽경수 청와대 춘추관장은 “정정보도를 요청하겠다”고 펄쩍 뛰기까지 했다. 차라리 ‘정권이 성공하려면 우호적 방송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솔직하기라도 하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정권을 국민이 어떻게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유재천 한국방송 이사장의 처신도 부적절하다. 한국방송 이사회는 사장 후보를 뽑아 대통령에게 임명을 제청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럴수록 권력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런데 공영방송 독립을 지켜야 할 보루인 그가 민감한 시기에 정권 핵심 인사들과 만나 대책을 논의한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방송 이사장의 자격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그는 대책회의 다음날, 한국방송 사원들과 마주친 자리에선 “(청와대 지시는) 단언컨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학자 출신의 유 이사장이 거짓말까지 이 정권 사람들과 궤를 같이하려는 모습은 애처롭다. 이미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유 이사장은 즉각 물러나는 게 옳다.
마찬가지로 대책회의를 주도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도 사퇴해야 한다.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방송 장악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이제 그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만큼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있을 명분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책회의 참석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지금이라도 한국방송 사태에서 손을 떼는 게 파문 확산을 막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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