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22 19:45
수정 : 2008.08.22 19:45
사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물을 검찰이 수사를 명분으로 통째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서울고등법원이 검찰의 압수수색영장을 받아들여 열람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기록물 관리의 매우 나쁜 선례라는 점에서 유감이다.
먼저 검찰의 태도다. 검찰이 수사해야 하는 것은 15~30년 동안 비밀로 지정된 대통령 기록물의 내용이 아니다. 문서가 다 반환됐는지, 또 반환된 게 대통령기록관에 있는 원본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이는 양쪽 컴퓨터에 있는 문서의 고유 식별번호와 파일 크기만 대조해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검찰은 애초 열람뿐 아니라 복사와 압수수색까지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러니 검찰의 의도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법원이 열람만으로 제한하기는 했지만, 이 역시 대통령기록물법의 취지 등을 고려할 때 과도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최소한 문서 내용을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하고, 내용을 보려면 개별적인 사유를 명시해서 다시 영장을 청구하도록 해야 했다. 37만여건에 이르는 지정기록물 전체에 대한 열람권을 아무런 제한 없이 허용한 것은 압수수색의 범위를 최소화하고 있는 법원의 일반적인 추세와도 어긋난다.
정치권과 검찰 등 관계기관들은 지금이라도 이 문제를 슬기롭게 다뤄야 한다. 우선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되도록 내용은 보지 않겠다”가 아니라 절대로 내용을 열지 말아야 한다. 잘못 열었다가는 정치보복 논란 등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기록 문화를 크게 후퇴시킬 뿐이다.
따라서 대통령기록관의 구실이 중요하다. 대통령기록관은 그동안 청와대 눈치를 보는 바람에 이 지경을 자초한 책임이 큰 만큼 내용물의 외부 유출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겠다는 자세로 검찰의 권한 남용을 감시하고 방어해야 한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등 여권의 책임도 막중하다. 전직 대통령의 기록을 열어보고픈 정치적 충동을 이겨냄으로써 우리의 정치 문화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이와 함께 지정기록물 공개를 법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좋은지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회에서는 재적의원 3분의 2 찬성이라는 어려운 요건을 정하고 있는 만큼 법원도 더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하든지 대의기관인 국회의 통제를 받도록 하는 보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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