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25 19:33
수정 : 2008.08.25 19:33
사설
<한국방송>(KBS) 이사회가 어제 후보자 면접을 거쳐 이병순씨를 새 사장으로 임명해 달라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여러 차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친정부 성향 이사들만 참석한 가운데 이런 결정이 내려졌다. 이사회 내의 문제제기나 한국방송 직원들과 시민단체 등의 반발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사회는 그동안에도 회의장을 여기저기 옮기거나 문을 걸어 잠그고 경찰을 불러들이는 따위 파행을 거듭했다. 법적·도덕적 정당성을 태연히 무시하는 후안무치가 놀랍기만 하다.
한국방송 이사회의 이런 저돌성이 정권의 뜻에 따른 것이라는 점은 이미 드러난 터다. 정연주 전 사장 해임 과정에서 저지른 온갖 무리수부터 그러했다. 방송통신위원장과 대통령실장 등 정권 실력자들이 한국방송의 새 사장 후보 등과 몰래 만난 지난 17일 비밀 대책회의에는, 이런 자리엔 끼지 말아야 할 유재천 한국방송 이사장까지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유 이사장의 구실이 무엇이었겠는가. 낙점된 후보를 이사회에서 공식화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유 이사장 자신한테도 부끄러운 일이거니와, ‘거수기’ 꼴이 된 이사회의 공정성도 땅에 떨어졌다.
그런데도 유 이사장과 이사회가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새 사장 선임을 강행한 것은 염치도 금도도 내팽개친 행위다. 이사회는 사장 선임에 앞서 신뢰를 되찾을 방안부터 마련해야 했다.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린 유 이사장의 사퇴와, 공모 절차의 중단이 먼저 이뤄져야 했다. 그런 최소한의 노력은커녕 아예 비판에 귀 닫고 형식적인 절차를 밀어붙였으니 더 큰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
정치적 목적으로 방송을 장악하는 데 이사회가 힘을 보탰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비밀 대책회의 당시 사장 후보로 가장 유력했다는 김은구씨가 최종 선정에서 제외됐다지만, 사장으로 제청된 이병순씨 역시 일찍부터 청와대 등 정권 핵심들이 호감과 함께 유력 후보로 꼽았던 인물이다. 이런 마당에선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은 헛된 포장일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 이런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한국방송 출신인 이계진 한나라당 의원이 공영방송 영구 중립화 방안을 내놓는 등 귀기울여 들을 만한 제안도 있다. 비판과 충고를 무시하고 사장 임명을 강행한다면 방송을 장악해 권력의 도구로 삼으려 했다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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