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27 20:50
수정 : 2008.08.27 20:50
사설
북한의 그제 영변 핵시설 불능화 조처 중단 발표는 협상용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테러지원국 해제 조건으로 강도 높은 핵 검증체계를 요구하는 미국에 적절한 수준의 타협을 요구한 것이다. 북한이 지난 14일 불능화 조처 중단을 관련국에 통보했으나 공식 발표를 미룬 것도 미국 태도를 보기 위함이었던 듯하다.
북한은 “우리나라의 아무 곳이나 마음대로 뒤져보고 시료를 채취하고 측정을 하는 것과 같은 사찰”에 대한 거부감을 분명히했다. 검증체계와 관련해 시료채취와 영변 핵시설 이외 사찰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다. 이 가운데 영변 이외 사찰 거부는 지금 상황에서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북한 전역을 사찰 대상으로 할 경우 검증 효과는 고사하고 끝없는 논란만 야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시료채취 문제는 협상을 통해 풀 수밖에 없다. 검증체계를 다룬 지난달 6자 수석대표 회담 발표문은 ‘시설 방문, 문서 검토, 기술인력 인터뷰 및 6자가 만장일치로 합의한 기타 조처’만 명시했다. 하지만 미국이 영변 시설 시료채취를 핵 계획 규명의 열쇠로 여기는 만큼 타협이 불가피함을 북한은 알아야 한다.
지금 6자 회담에서 다루는 북한 핵문제는 영변 시설을 중심으로 한 플루토늄 핵 계획, 우라늄 핵 계획, 핵 이전 의혹 등 세 가지다. 이 가운데 우라늄 핵과 핵 이전은 ‘과거 핵문제’인데다 실체도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올봄 핵 신고 문제가 불거졌을 때 미국은 이들을 신고 대상에서 빼는 데 동의함으로써 회담을 진전시켰다. 검증 단계인 지금도 비슷한 해법을 적용할 수 있다. 플루토늄 핵 계획에 집중하되 현실적 위협이 아닌 우라늄 핵과 핵 이전에 대해서는 여지를 두고 새 접근법을 찾는 것이다. 플루토늄 핵 검증체계 협의에 발맞춰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가 해결돼야 함은 물론이다.
지금 갈 길은 분명하다. 북한과 미국은 좀더 유연한 태도로 협상하고, 한국과 중국은 건설적 개입으로 협상 동력을 높여야 한다. 핵 협상이 잘 안 풀릴 때마다 6자 회담 자체에 대한 회의를 부추기는 이들이 있다. 한국과 미국 등 회담 참가국 정부는 이들과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다가온 미국 대통령 선거 등 이런저런 상황논리를 들어 미적대는 태도는 현명하지 않다. 지금 상황은 위기가 아니라 더 밀도 있는 협상을 위한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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