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01 21:28
수정 : 2008.09.01 21:28
사설
지난주 발표된 여간첩 사건을 두고 ‘이상하다’는 말이 시민단체와 보수언론 등을 가리지 않고 나오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의문점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증거라곤 간첩이라는 원아무개씨 진술 말고는 딱히 제시된 게 없다. 그 진술조차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가 북한에 넘겨줬다는 정보는 대부분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로, 국가기밀은 거의 없다. 정예 간첩이라면서 공개강연에서 대북 찬양 발언을 하는 등 행동도 어설프다. 그런 원씨를 남과 북의 정보기관이 서로 간첩으로 활용하려 들었다니, 어디까지 사실인지 알 길이 없다. 절도 전과자인 원씨가 북한에서 중범죄를 저지르고도 쉽게 풀려났다는 등의 이력도 석연찮다. 북한 사정에 맞지 않는 진술도 몇 있다. 하나하나 따지면 미심쩍은 것투성이다. 3년간 내사했다는 사건이라면서 이렇게 어설프게, 그것도 이 시점에서 발표한 게 의아하다. 간첩 사건이라면 합당한 처벌을 해야 하겠지만, 사실과 다른 과대포장이라면 그 의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조짐들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이번 사건 발표 직후 열린 국방부 회의에선 군 내부에 간첩 용의자가 50여명 있다는 등의 메모가 전달됐다고 한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당 공식 행사에서 “북한 간첩에 포섭되거나 불순한 사상을 지닌 인사들의 정부 조직 내 침투와 관련된 대규모 사건”을 예고했다. 엄청난 소식이다. 하지만 사실이라면 엄정하고 조심스럽게 수사해야 할 것이지, 이런 식으로 먼저 공포 분위기부터 조성하려 들 일은 아니다. 그렇잖아도 최근 경찰이나 검찰 등이 국가보안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비판세력을 옥죄려 한다는 말이 많았다. 이러니 공안당국이 정말 간첩을 잡으려는 게 아니라, 다른 속셈으로 ‘빨갱이 몰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된다.
이념 대결의 아픈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에선 공안 분위기가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된 일이 잦았다. 간첩·불순분자가 있다는 정권의 주장은 보수성향 지지세력을 모으고, 비판세력을 빨갱이로 몰아 위축시키는 무기로 쓰였다. 이제 공직사회에까지 이런 칼날을 들이댄다면, 비우호세력을 공직에서 몰아내 제 사람 심는 데 매카시즘을 동원하는 꼴이 될 수 있다. 그런 편 가르기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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