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03 21:38
수정 : 2008.09.03 21:38
사설
지금의 금융불안 등 경제 난국이 정부의 신뢰 상실에서 비롯됐다는 덴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이 정부는 남은 기대마저 파괴할 짓만 골라서 하고 있다. 경인운하 재추진을 고리 삼아 한반도 대운하 사업 되살리기에 골몰하는 게 그것이다. 불과 40여 일 전 대통령과 국토해양부가 전면 중단하겠다고 한 사업을 입에 침도 마르기 전에 되살릴 궁리나 하고 있으니, 누가 이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까.
지난 6월 대통령은 특별기자회견에서 국민이 반대하면 대운하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국토해양부도 사업단을 해체하고, 민간이 대운하 제안서를 가져와도 받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호언에 따라, 대다수 국민이 원치 않는 사업에 끌려들어 수백억원씩이나 썼던 건설업체들은 닭 쫓던 개 꼴이 됐다.
이번에도 꼼수가 숨어 있다. 대운하를 직접 언급할 경우 맞게 될 역풍을 우려해, 경인운하 재추진을 디딤돌로 삼았다. 경인운하는 이른바 한반도 대운하의 관문에 해당한다. 영산강 금강 낙동강 운하사업을 재촉하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국토해양부는 엊그제 업무보고 자료에서 내년 초 민자 사업자 모집을 공개하고, 어제 정종환 장관이 대운하 추진 희망을 밝혔으니, 군불 지피기도 신속하다.
경인운하의 타당성은 2003년 감사원 감사 결과로 판가름난 사업이다. 감사원은 경인운하의 비용편익이 0.76에 불과하고, 해양오염과 생태계 파괴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중단을 권고했다. 당시 감사에선 건설교통부가 한국개발연구원의 조사분석 결과를 왜곡·과장한 사실도 드러났다. 여기에 건설업체들의 비자금 조성과 로비 사실도 드러나면서 2005년 사업 추진이 전면 중단됐다. 이번에 건교부는 타당성의 근거로 한 외국 용역회사의 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하지만, 여기엔 굴포천 방수로 사업에 들어간 수천억원의 공사비는 물론 접속도로 건설 추가비용 등을 비용에서 제외하고, 물동량은 과다 계상해, 기대수익을 부풀린, 부실 보고서였다.
국민을 바보로 여기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추진하려는 것은 토목경기로 지금의 경제 난국을 미봉하자는 것일 게다. 대통령은 엊그제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지시했다. 그러나 이것은 배 고프다고 제 살 베어먹는 격으로, 나라 살림과 국민 신뢰를 동시에 파탄 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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