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04 20:51
수정 : 2008.09.04 20:51
사설
한나라당이 시위 피해자들의 집단소송제 도입 추진을 본격화했다. 이번 정기국회 중 입법을 끝내겠다고 한다. 원내 과반수 의석을 가진 한나라당이 마음먹으면,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어떤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할 리 없다.
본래 집회와 시위는 누군가에겐 의도하지 않는 불편을 끼친다. 차량 소통의 어려움에서부터, 아주 작게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외침을 인내해야 하는 불편을 초래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가 집회·시위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하는 건, 이걸 제약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민주주의란 관용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오늘 내가 다른 이의 주장을 참고 들어줘야, 내일 다른 이들이 내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래야, 다양한 의견이 분출하는 속에서도 사회는 질서를 잃지 않고 조화롭게 운영될 수 있다.
한나라당의 입법 추진은 이런 민주주의 기본 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다른 사람 의견을 들어보라고 권하기보다, 조금이라도 내 이익이 침해당하면 참지 말고 싸우라고 부추긴다. 사회를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공간으로 만들어 버리면, 관용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견제받지 않은 권력만 숨 쉬게 된다. 집단소송제 도입이 촛불집회를 염두에 두고 있음은 불 보듯 뻔하다. 정부가 국민 저항을 물리력으로 제어할 정당성과 명분이 없으니까, 집단소송제 도입으로 시민끼리 싸우게 하고 그 과실이나 따 먹겠다는 발상에 불과하다.
집단소송제란 힘없는 시민과 소비자들이 거대한 기업을 상대로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고자 고안된 제도다. 미국에서의 고엽제 소송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집회와 시위를 벌이는 이들은 대개 법적 절차만으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나 일반 시민들이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 찾기를 제한하기 위해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는 건, 집단소송제 본래 취지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한나라당은 시위 피해자의 집단소송제 도입을 중단하는 게 옳다. 한나라당이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당이라면, 오히려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할 소지가 있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는 데 힘을 쏟는 게 타당하다.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는 데엔 진보·보수 정당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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