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05 19:22
수정 : 2008.09.05 19:22
사설
국정원 권한을 대폭 확대하려는 시도가 본격화하고 있다. 지금 시점에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건 우연이 아니다. 자기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하려는 국정원의 조직 논리와, 이걸 효과적인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정권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현정부는 요즘 들어 검찰·경찰 등 공안기관들을 총동원해 원활한 국정운영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기색이 뚜렷하다. 그 다음에, 어느 기관보다 막강한 정보수집 경험이 있는 국정원을 다시 활용하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과거 국정원이 정보 수집과 판단에서 다른 기관을 압도할 수 있었던 건, 도청이나 프락치 등 탈법적 방식을 운용하는 게 가능했던 탓이 크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해진 사회 분위기에서 이런 방식의 활동이 쉽지 않자, 아예 법을 고쳐서 논란의 여지를 없애자는 게 국정원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탈법·합법 여부가 아니라, 그런 방식들이 시민 기본권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데 있다.
국정원 업무범위를 포괄적으로 확대하면, 국정원은 국가안보 분야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에까지 감시의 손길을 뻗칠 개연성이 매우 높다. 휴대폰 감청이 쉬워질수록 시민들의 전화통화를 엿듣고 싶은 욕구도 강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조지 부시 행정부가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국가안보국(NSA)에 영장 없는 전화 도청을 허용하자, 수많은 일반 시민들의 전화까지 도청이 됐던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래서 정보·수사기관의 권한은 포괄적이 아니라 최대한 구체적으로 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더욱 걱정스런 건 국정원을 활용하는 정부의 태도다. 과거 정보기관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건, 최고통치자가 이를 묵인하고 때론 부추겼던 탓이 크다. 그래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엔 대통령의 국정원장 독대를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이명박 정부는 그걸 부활시켰다. 최고통치자가 정보기관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거나, 정보기관 스스로 대통령 신임을 얻었다고 판단하고 잘못 행동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정보기관을 국정운영의 첨병으로 삼는 시대는 전세계적으로 끝났다. 현정권이 다시 이런 유혹에 빠진다면, 그건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성공할 수도 없다. 정부·여당은 국정원법이나 통신비밀보호법 등의 개정 시도를 즉각 그만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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