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07 21:18
수정 : 2008.09.07 21:18
사설
이명박 정부와 불교계의 갈등이 수습되기는커녕 더 악화하는 듯하다. 상처를 입은 불교계보다 가해자 격인 정권 핵심이 오히려 더 강경한 탓이다. 한나라당 안에서도 어청수 경찰청장 경질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많지만, 정권 핵심은 이조차 거부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일 불교계와의 갈등에 대해 처음으로 직접 언급하기로 했다지만, 이 역시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가 아니라 유감 표명에 그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대통령 측근들은 “어 청장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편들거나, 한나라당 내 온건론을 윽박지르며 엉뚱하게 불교계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법대로’를 내세워 불교계를 위협하려는 기류까지 있다고 한다.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하려는 진정성보다는, 내가 뭘 잘못했느냐는 투의 날 선 오만과 독선이 두드러진다.
이명박 정부가 이런 방침을 굳혔다면, 이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선택이다. 지금 정부의 태도는 불교계와의 갈등이 격화하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뜻이 된다. 스스로 교회 장로이기도 한 이 대통령이 지지기반인 기독교, 특히 근본주의 교파 편을 들겠다는 뜻을 분명히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실제 이들 가운데선 불교계와 한치도 타협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그런 근본주의적 대결 논리로 문제를 바라보다간 더한 갈등과 분열로 번지게 된다. 우리 사회에 일찍이 없었던 큰 종교대립이 빚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내 편 네 편을 갈라 한쪽만 편드는 정치가 갈수록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우리 역사의 경험이다.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민주화 요구를 거부했던 역대 권위주의 정부가 바로 그러했다. 이명박 정부가 이번 문제에서 한나라당 내 온건파의 목소리까지 무시하고 억누르는 것 역시 스스로 입지를 좁히는 ‘뺄셈 정치’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이라도 태도를 바꿔야 한다. 불교계가 요구하고 국민이 바라는 바는 진심을 담은 사과와, 다시는 정부가 종교편향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분명한 약속과 조처다. 국가와 사회의 분열을 막는 게 대통령의 책무이기도 하다. 그렇게 하면 된다. 이와 함께 이미 우리 사회와 이명박 정부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어청수 청장은 구차하게 자리를 보전하려 추한 모습을 보일 게 아니라, 더 큰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물러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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