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09 20:02
수정 : 2008.09.10 01:18
사설
이번에는 교육감들이 총대를 멨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5월과 7월, 특정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수정 압력을 행사하다가 여의치 않자, 시도교육감협의회가 엊그제 이 교과서의 선정을 막겠다고 나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교육감에겐 교과서와 관련한 어떤 자격도 권한도 없다. 특히 검정 교과서의 경우 편집과 집필은 출판사와 집필자에게, 채택권은 교과협의회나 학교운영위원회 등 각 학교 구성원에게 있다. 그러나 이들에겐 인사권과 예산권이 있다. 학교장의 손목을 비트는 방식으로 채택을 막을 수 있는 권력이 있는 것이다. 이미 이 교과서를 채택한 일부 학교에선 학교장이 교사들에게 교체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문제 삼는 교과서 내용에 대한 학계의 판단은 사실상 이미 내려졌다. 2004년 권철현 의원(현 주일대사)이 국정감사 때 문제를 제기하고, 2005년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 포럼이 다시 문제 삼았지만, 역사학계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나라당이나 뉴라이트 계열의 삐뚤어진 역사의식과 교육을 정치에 예속시키려는 의도를 비난했다.
학계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지난 연초엔 엉뚱하게도 상공회의소가 그 주장을 정리해 수정 의견을 냈다. 교과부는 이를 금과옥조 삼아 출판사에 수정 압력을 행사했으며, 시·도 교육감이 학교장을 윽박지르기에 이른 것이다. 이 정부 아래선 학문도 권력의 도구로 삼으려는 정치인, 권력에 양심을 팔아버린 정치교수, 정권의 시녀인 교육행정가, 그리고 이윤만 추구하는 경제인에게 교과서 집필을 내맡길 모양이다.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교육을 보호해야 할 사람이 교육감이다. 설사 교과서에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학계의 자율적인 조정 기능이 작동하도록 도와주는 구실만 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교육에 정치를 끌어들였다. 이제 교육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충돌은 불가피하다.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