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09 20:05
수정 : 2008.09.09 20:05
사설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종교 편향 논란과 관련해 불교계에 공식적으로 유감의 뜻을 밝혔다. 그는 “일부 공직자가 종교 편향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언행을 해서 불교계의 마음이 상한 걸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의 종교 편향 활동을 금지하는 조항을 공무원 복무규정에 신설키로 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 대통령 발언은 몇 가지 점에서 불교계뿐 아니라 이번 논란을 바라보는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 유감 표명도 민심 흐름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종교 편향 논란의 근본 원인을 제시하는 데서부터 이 대통령은 솔직하지 못했다. 그는 ‘일부 공직자의 언행’을 문제의 시발점으로 지적했지만, 종교 편향 논란이 이렇게 커진 덴 이 대통령 자신의 언행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게 많은 국민의 시각이다. 그는 집권 이후 첫 인사에서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내각’이란 말이 회자될 정도로 특정 교회 인맥을 중시했고, 청와대로 목사를 불러 예배를 봤다. 대통령이 그렇게 특정 종교에 기대는 모습을 보이니, 다른 공직자들도 편향 논란을 의식하지 않고 여러 부적절한 행동을 했던 것이다.
종교 편향 논란의 중심엔 이 대통령 자신이 있는데, 왜 그에 대한 명확한 반성 없이 ‘일부 공직자’를 핑계 대며 넘어가려 하는지 국민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데서 이 대통령의 진실성이 의심받는 것이다. ‘내가 먼저 이런저런 부분을 고쳐나가겠다’고 대통령이 말하면, 그런 말 한 마디가 공무원 복무규정을 고치는 것보다 훨씬 반향이 큰 법이다.
대통령 유감 표명의 폭이 너무 좁아, 불교계가 요구하는 ‘화합’의 내용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점도 아쉽다. 이 대통령은 “이번 기회로 종교계나 모든 사회단체가 관용하고 화합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려면, 불교계가 대통령의 사과와 함께 어청수 경찰청장 사퇴와 시국 관련 국민 대화합 조처를 요구한 뜻을 헤아려야 했다. 정부와 불교계의 갈등은 단순히 종교적 오해의 문제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극심해지는 우리 사회 분열의 적나라한 한 단면이다. 공안탄압에 점점 더 의존하고 거기에 앞장을 서는 경찰 총수를 끝까지 보호하려 해선 관용과 화합의 계기를 이룰 수 없다는 걸 이 대통령은 깨닫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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