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15 20:41
수정 : 2008.09.15 20:41
사설
미국 3~4위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 위기에 몰리고 메릴린치가 뱅크오브아메리카에 전격 인수됐다. 100년 이상 월가를 지탱한 두 기둥이 주택시장 붕괴와 세계 경기둔화로 내려앉은 충격적인 사건이다. 당장 주가 폭락, 신용 경색 등 미국발 금융불안이 몰아닥치고, 세계적인 돈가뭄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우리 정부는 이른바 ‘9월 위기설’을 넘겼지만,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가를 깊이 인식해 위기 관리에 만전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위기설을 진화하겠다’며 외평채 발행을 자신했던 정부가 결국 전례없는 발행 연기 결정을 내린 것은 곱씹어볼 만하다. 정부는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금리 수준이 지나치게 높아 무리한 발행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외환시장의 안정을 위한 외평채 발행은 포기했지만 국내 금융시장의 안정성은 확인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국제 자금조달 여건이 어려워져 낮은 비용으로 외평채를 발행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무리였다. 그러니 “나와 보니 심각하더라”는 정부의 말은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음을 자인한 셈이다. 외평채 발행 연기로 국내 기업들은 국외자금 조달에 차질을 빚게 됐다. 정부 말을 또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협상 중단이 리먼을 벼랑으로 내몬 측면이 있지만, 신중한 결정을 내린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 경제엔 거센 파고가 지속적으로 밀려오고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도 북한의 체제 불안을 부를 수 있어 한국의 국가 리스크를 끌어올리고 있다. 정부의 위기대처 능력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은 심각한 상태다. 환율정책에서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9월 위기설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탓이다.
새로운 위기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상황을 면밀히 예측하며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지금의 금융위기가 100년 만에 한 번 올 수 있는 사건이라며, 더 많은 은행이 문을 닫고 실물경제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예고했다. 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정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을 위기 극복의 두 축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외평채의 성공적 발행이 곧 위기의 끝인 양 단기 성과주의에 연연해서 헤쳐나갈 수 있는 국면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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