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15 20:42
수정 : 2008.09.15 20:42
사설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가 낸 ‘인터넷 실명제에 관한 보고서’는 여야 정당에 두루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회 보고서는 인터넷 실명제를 둘러싸고 ‘표현의 자유 침해’란 의견과 ‘사이버 역기능 방지’란 의견이 맞선 상황을 살피면서, 나름의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했다. 이 보고서는, 인터넷 실명제를 포괄적으로 강화하면 자유로운 사이버 토론 문화가 위축될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사이버 범죄에 적절한 조처를 취할 수 있는 대응시스템 강화와, 건전한 사이버 문화 형성을 위한 자발적 캠페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포괄적인 사전 규제보다 사후에 적극적 대응을 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법적 규제보다 자발적 규제를 강조한 보고서 내용은 적절한 지적이라고 본다.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여론의 자유로운 소통이 중요한 건, 이것이 국민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핵심 영역에 들기 때문이다. 실명제를 시행하면 이것 때문에 글을 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이들의 의견은 공론의 장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 보고서도 지적했듯이, 익명으로 글을 올리는 사람의 다수는 사회적 약자다. 익명이더라도 사회적 약자의 의견 표명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게, 잘못된 정보의 유통 등으로 비롯된 해악보다 훨씬 소중하다는 게 ‘표현의 자유’ 정신인 것이다. 익명성의 역기능은 명예훼손 제기 등 피해구제 장치를 통해 사후에 최소화하려 노력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 나라들이 모두 인터넷 익명성을 적극적으로 허용하면서 가능한 한 넓게 ‘표현의 자유’를 해석하는 건 이런 판단 때문이다. 국회 보고서가 조사한 주요국 가운데, 중국만이 유일하게 인터넷 실명제를 확대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한나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인터넷 포털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쪽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또 방송통신위는 이미 지난 7월에 인터넷 제한적 실명제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미국 의회의 초당파적 연구조사 기관인 의회조사국(CRS)을 본받아 지난해에 새로 만든 기구다. 미국 의회 입법과정에서 의회조사국 보고서는 큰 영향력을 지닌다. 한나라당과 정부는 인터넷 여론을 규제하기에 앞서, 국회의 이번 보고서를 주의깊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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