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16 19:41
수정 : 2008.09.16 19:41
사설
한나라당이 어제 의원총회에서 홍준표 원내대표의 퇴진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서 추경예산안 처리 뒤에 다시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고 한다. 말이 결론 유보지, 정치적으론 홍 원내대표에 대한 불신임으로 해석된다. 원내대표를 바꾸고 안 바꾸고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결정할 문제지만, 이번 퇴진 논란이 진행되는 방식을 보면 한나라당이 원내 다수당이자 집권여당에 걸맞은 위상을 스스로 세우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의원총회에서 홍준표 원내대표의 퇴진을 강하게 주장한 쪽은 주로 친이명박계 의원들이었다. 여기엔 홍 원내대표가 이명박 정권의 성공을 위한 노력이 부족하고 청와대에 자꾸 부담을 주는 식으로 국회 운영을 하고 있다는 강한 불만이 깔렸다고 한다. 좀더 쉽게 말하면, 여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전적으로 뒷받침해야 하는데 홍 원내대표가 그걸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국회 및 집권여당의 권위와 자율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앞으로 홍 원내대표가 다시 재신임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를 비롯한 당 지도부의 독자적인 판단과 원내대책 결정의 폭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치된 전망이다.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려는 청와대 입김이 더 강해질수록, 국회는 극심한 파행을 겪거나 행정부의 거수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홍준표 원내대표의 거취 논란을 단순히 한나라당 내부 문제로 치부해버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국회 운영에서 홍 원내대표의 책임을 굳이 들라고 하면, 거대여당 원내 사령탑으로서 추경예산안과 같은 주요 사안에서 여야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단독으로 처리하려 했다는 게 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당장 국회는 예산결산특위와 본회의를 열어 추경안을 다시 처리해야 한다. 추경안은 여야간에 이미 상당한 의견 접근이 이뤄진 상태다. 삭감액을 민생예산으로 돌리자는 민주당 요구를 비롯해 몇몇 사안에서 이견이 있긴 하지만, 합의를 못 이룰 정도는 아니다. 한나라당이 재차 단독 처리를 강행하려 한다면, 조속한 처리를 바라는 청와대 의도엔 부합할지 모르지만 국회의 위상과 권위를 스스로 실추시키는 꼴이 된다. 한나라당은 야당과 충분히 협의하며 국회를 운영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두려워해야 할 건 청와대가 아니라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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