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전향적 의견 표명이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과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 의견에 대해 “현실을 잘 모른다”는 식의 신랄한 비판을 쏟아놓기도 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이런 반발에도 굽힘없이 사형제 폐지나 초등학생 일기 검사, 경찰직 등 키 제한, 공무원 직급별 정년 차별 등 문제에 대해 일관되게 진보적인 권고와 의견을 잇따라 내놓았다. 취임 한 달여 만에 논란의 칼날 위에 선 조영황 국가인권위원장을 만났다.
조영황 국가인권위원장은 자신의 집무실로 찾아간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에게 “오늘 인터뷰하는 데도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며 “차려 입지 않은 것이 아니라, 원래 복장이 그런 것이니 이해해달라”고 운을 뗐다. 홍세화 기획위원도 “저도 원래 넥타이를 잘 매지 않는데, 오늘은 인터뷰 때문에 이렇게 넥타이를 맸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첫 질문은 조 위원장이 ‘시골 판사’ 노릇을 하던 몇 년 전 이야기로 시작됐다.
조영황 ‘동일노동·임금원칙’ 왜 헷갈려 하는가
홍세화 결국, 사유재산권 우위 한국 사회가 문제
홍세화 기획위원=고향인 고흥군 법원에서 판사생활 하시다가 서울로 올라오셨는데, 시골 생활을 어떠셨습니까? 또 시·군 법원 판사라는 제도가 생소한데, 어떤 것입니까?
조영황 국가인권위원장=예전에는 순회 법원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시·군 법원 판사를 따로 임명합니다. 경험 많은 변호사를 판사로 임용하는데, 제가 할 때는 9명이 임용을 받아서 일했습니다. 저는 고향인 전남 고흥군에 지망했는데, 승진 같은 것 없이 4년을 판사생활 했습니다. 시골 판사는 모든 재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액 심판이라고 해서 2천만원 이하, 이혼 확인, 즉결 등 재판을 합니다. 정년이 63살이라서 2004년에 퇴임하고 시골서 3개월 정도 쉬고 있다가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을 1년 한 뒤,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오게 됐습니다. 시골 판사로 일할 때는 그냥 내려가서 거기서 살았고, 그만둔 뒤에도 그냥 시골서 산다고 생각하고 한 3개월 농사를 지었습니다.
홍=시골 생활이 평온하셨을 텐데, 괜히 도시로 나오셔서 여러 논란에 휘말리셨습니다.(웃음)
조=일해보니 저는 시골 판사가 적격이었습니다. 시골 사람들이 감정 처리를 잘 못해서 큰 것보다는 작은 이해로 충돌하는데, 그것을 말리고 조정하는 일이 천직이구나 싶었습니다. 정년이 있어서 더 이상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서울로 와서 국민고충처리위원장으로 일해보니 또 이게 적성이구나 싶더라구요. 그리고 국가인권위원장은 사실 맡기가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이것도 잘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마디로 지조가 없는 사람이죠.(웃음)
홍=최근 논란이 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외부에서 인권위가 월권이고,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직무유기라는 양 극단의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인권위가 왜 그런 평가를 받았다고 보십니까?
조=인권위가 아직 3년밖에 안 됐는데, 많은 일을 했고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직 인권위에 대해 이해가 많이 부족합니다. 한 방송 토론프로그램에서 노회찬의원이 “우리사회에서 인권은 그간 냉동상태에 있다가 이제 막 해동되고 있는 상태”라고 하시던데, 우리 사회에 ‘인권’이라는 가치가 아직 튼튼히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특히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 이른바 사회권에 있어서는 지금도 낯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권위에 대한 기대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홍=솔직이 북한 인권 문제는 <한겨레>에도 난처함이 있습니다. 오히려 수구적 신문이 북한 인권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입장 표명은 필요하지 않습니까?
조=그렇습니다. 2003년부터 북한인권에 대해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인권 관련 국내외 시민단체와 전문가를 모시고 여러 차례 간담회를 가졌고, 작년 말에는 국제심포지엄도 열었습니다. 북경과 연변·션양 일대에 가서 탈북자 실태를 조사하고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현재는 ‘북한인권 실태파악을 위한 연구용역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곧 ‘국내 정착 탈북자 실태조사’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국내외 각종 정책자료 및 유엔 인권위원회에서의 북한인권 논의 모니터 활동은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일입니다. 앞으로 축적된 자료를 검토해서 국내정착 탈북자 인권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인권에 접근하는 인권위 입장에 대해서도 논의 할 것입니다. 지난 4월에 전원위원회를 마친 후 간담회 형식으로 위원들이 모여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토론을 했습니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신중을 기해 검토할 것입니다.
홍=70~80년대 납치·고문·살인 등 이 땅에서 인권이 참담하게 유린되던 시기에는 권력편에 서거나 침묵하고 경제성장을 말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북한 인권을 주장합니다. 흥미로운 일이지요.
조=북한 인권 관련해서 미국에서 ‘북한인권법’ 을 통과시켰고, 일본에서도 비슷한 인권법이 의회에 계류중이고, 유엔에서도 북한 인권 관련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나 우리 의견은 그들과 같을 수 없습니다. 미국·일본·유엔도 하는데 한국의 인권위는 뭐하냐고 하지만, 그런 것에 편승하지도 말고 우리 주관을 갖고 일해야 합니다.
마지막 ‘마주보기’에 국가인권위원장을 초청한 직접적 이유는 아마도 얼마 전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싼 인권위과 노동부·여당 간의 갈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인권위는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은 사유를 제한해야 하며, 동일 노동에 대해서는 동일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을 밝혔다. 이에 대해 노동부 장관은 “잘 모르면 용감해진다”,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은 “황당무계하고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정면 비판했다. 그동안 인권위는 이 문제에 대해 말을 아껴왔으므로 이 문제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