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17 20:26
수정 : 2008.09.17 20:26
사설
최근 북한에 대한 대응 방식에서 우리 정부와 미국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엿보인다. 먼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설에 대한 반응이다. 와병설이 미국 언론에서 먼저 보도되기는 했지만, 미국 정부는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에 대해 지금까지 한 번도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았다. 반면에 우리 정부는 청와대 대변인이 ‘와병’이라고 확인한 것을 비롯해 정부 관계자들이 나서 미확인 정보나 첩보 수준의 내용을 경쟁적으로 공개했다.
다른 하나는 북한과의 관계다. 미국은 지난달 중순 북한이 핵 불능화 조처를 중단한 이후에도 뉴욕 채널을 통해 꾸준히 핵 검증 문제를 논의해 오는가 하면 기존의 대북 식량 지원도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 정부는, 최근 조금 변화가 있지만 그동안 민간교류에 제동을 거는가 하면 국제식량기구의 대북 긴급 식량지원 요청도 사실상 외면해 왔다.
이와 함께 개성공단에 관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0일 중소기업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수만 명이 입주하는 기숙사를 지을 경우 어떤 일이 생길지 잘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앞서 남북은 지난해 말 개성공단 확대를 위해 기숙사 건립에 합의한 바 있다. 기숙사 건립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고 청와대는 해명하지만, 대통령 발언은 누가 봐도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미국과 우리나라가 처한 환경이나 처지가 다르며, 우리의 경우 특히 금강산 관광객 피살로 말미암아 대북관계에서 운신의 폭이 매우 좁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상황이 어려울수록 관계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위기를 잘 관리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상황 전개를 놓고 볼 때 북한의 처지에서 미국과 한국 중 어느 쪽을 더 신뢰할 수 있을지를 살펴본다면 해답은 명백하다.
마침 6자 회담 경제·에너지협력 실무그룹 차원의 남북 대표단 접촉이 내일 판문점에서 열린다. 이번 접촉은 북한이 먼저 요청해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엿보이는 만큼 우리 정부의 대응에 따라서는 그동안 꽉 막힌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정부는 실무적이고 수동적으로만 임하지 말고, 더욱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임하기 바란다. 대북 식량지원 등도 차일피일 미룰 게 아니라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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