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18 21:53
수정 : 2008.09.19 01:12
사설
어제 청와대에서 열린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확대를 위한 민관합동회의’에 유난히 관심이 쏠렸다. 정부와 경제계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혹시 현 금융위기를 헤쳐나갈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진정시킬 큰그림은 보이지 않고, 정부가 기업들에 투자를 늘려달라고 호소하는 구태의연한 모습만 보여 실망스럽다.
이날 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한 발언을 보면 아직도 현 금융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듯하다. 이 대통령은 “불확실한 요소들이 다 제거돼 오히려 예측 가능한 시대로 들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으로서 위기를 부추기는 말을 할 수야 없겠지만, 현재 금융위기는 불확실성이 제거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금융위기가 실물부문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면,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불황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근거 없는 낙관주의는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대통령이 기업들에 투자를 늘려달라고 주문하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30대 그룹이 연말까지 모두 96조원을 투자한다고 했다는데, 경제 여건이 최악인 상황에서 자칫 잘못 투자했다간 부실만 더 키울 수도 있다. 기업 자체 판단으로 투자를 늘릴 수도 있겠지만 국내 주식값이 폭락하고, 환율은 폭등하며, 중소기업들이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는데, “기업들도 투자를 늘려 공격적 경영에 나서 달라”는 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겠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국내 물가가 안정될 것이란 인식도 대단히 안이하다. 유가 하락이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되겠지만 지금처럼 환율이 폭등하는 상황에서는 물가가 불안해질 가능성이 더 크다. 물가 안정은 여전히 우리 경제의 최우선 과제이고, 이에 대한 심도 있는 대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국제 유가가 내렸으니 주유소 기름값도 빨리 내리도록 하라는 말이나 하고 있을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정부와 경제계가 머리를 맞대고 경제 살리기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경제위기가 깊어지고 있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모여서 한다는 얘기가 ‘기업 규제를 완화해 줄 테니 투자를 늘려 달라’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 기업 지원 대책을 발표하고, 규제 완화 실적 점검이나 하는 그런 전시성 행사는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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