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19 18:10
수정 : 2008.09.19 18:10
사설
어제 <한국방송>(KBS) 중견 프로듀서 50여명이 공영방송 사수란 깃발을 들어올렸다. 1980년대 후반에 입사해 지금은 모두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피디들이 후배 기자·피디들의 투쟁에 동참을 선언한 것에서 우리는 한국방송의 위중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땡전뉴스’, ‘편파방송’이란 오명을 쓰고 있던 한국방송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언론’으로 거듭나도록 힘을 보탰던 이들 피디들은 “상식으로 굳어졌다고 믿었던 공영방송 제도가 권력과 자본의 욕망에 의해 와해되기 일보 직전”에 있기에 투쟁에 나섰다고 밝혔다. 방송 장악을 최우선 목표로 내건 이명박 정권은 온갖 탈법을 동원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장을 앉히고, 그것도 모자라 예·결산권을 내세워 방송을 순치시키려 기도하며, 새 사장은 정권의 눈치에 따라 인사 전횡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취임 후 보은 인사로 물의를 빚었던 이병순 사장이 17일 있은 사원 인사에서 자신의 출근저지에 앞장섰던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케이비에스 사원행동’ 참가자에 대해 철저하게 보복했다. 또 이 방송의 신뢰도를 끌어올리는 데 톡톡한 몫을 한 시사보도팀과 탐사보도팀은 해체하는 수준으로 인사를 했다. 이 사장이 취임사에서 존폐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대내외적으로 비판받아 온 프로그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해졌다. 방송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무로 돌리고 한국방송을 20년 전의 편파방송으로 되돌리겠다는 뜻을 만천하에 선포한 셈이다. 이 사장은 정권과 보수언론, 그리고 퇴영적 노조의 암묵적 지지가 있으니 거칠 것 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반대자들을 흩어놓고, 그들의 일을 뺏어 무장해제해 버리면 그뿐이라고 자신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잘못됐다. 언론의 자유를 지켜내려는 투쟁은 엄혹한 박정희·전두환 정권 아래서도 계속됐다. 지난 20년 동안 방송 민주화를 위해 싸워 온 양식 있는 방송인들이 그토록 쉽게 무릎을 꿇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사원행동, 기자협회, 피디연합회의 젊은 후배들의 투쟁에 중견피디들이 합류하는 모습을 보라.
이 사장은 인사의 기본원칙도 안 지킨 보복인사를 즉각 철회하고 한국방송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키려는 기도를 중단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내부의 반대를 넘어 국민적 저항까지 각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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