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21 20:22
수정 : 2008.09.21 20:22
사설
세계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정부의 태도가 영 미덥지 않다. 국내 시장을 안정시킬 만한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할 뿐 아니라 어떤 정책은 거꾸로 가기도 한다. 주택 공급 확대처럼 부동산 거품을 더 키울 가능성이 큰 정책까지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
지난주 우리 금융시장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요동쳤다. 우리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시장이 이처럼 크게 흔들린 데는 정부 책임도 없지 않다. 매일 국내외 시장 상황을 점검하고 대비책을 마련한다고 말만 하면서 시장을 안정시킬 만한 실질적인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주말 뒤늦게 대통령 주재로 금융상황 점검회의가 긴급 소집됐지만,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기민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하나 마나 한 원칙론만 되풀이됐다. 최근의 구체적인 대책이라곤 한국은행이 신용경색 완화를 위해 3조5천억원을 시장에 공급한 게 고작이다.
정부가 세계 금융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존의 정책 방향을 고수하는 것도 문제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정부 규제를 최소화하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김으로써 초래됐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미국 정부는 이미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바꾸려고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금산분리 완화나 금융규제 철폐 등 기존의 정책을 그대로 밀어붙이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회에 제출된 금산분리 완화 법안 등 규제개혁 법안들이 신속히 처리되도록 하라”고 거들었다. 미국 금융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나 알고서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최근 발표된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은 더욱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알다시피 미국 금융위기는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에서 촉발됐다. 주택시장 거품 붕괴가 금융위기로 번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주택시장 거품 붕괴 경고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런 마당에 건설경기를 부양하겠다고 주택 공급을 늘리면 주택시장이 경착륙할 가능성이 커진다. 위기의 불씨를 더 키우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정부는 물가, 환율, 금리 등 거시경제 변수들을 안정시키는 데 치중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채 규제 완화나 건설경기 부양 등 엉뚱한 처방만 계속한다면 우리 경제는 진짜 위기에 빠질 수 있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