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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9.22 19:56 수정 : 2008.09.22 19:56

사설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정부와 언론의 시대착오적 이념공세가 날로 거칠어지고 있다. 학교의 자율성,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학문의 전문성에 대한 고려는 상상할 수 없다. 수능시험을 앞두고 공부하는 학생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다. 이제는 절차와 취지조차 무시한 채 조폭적 방식으로 전면 개정을 강제한다. 권력도 잡았는데 그깟 일쯤 못하겠는가라는 태도다.

하긴 인권이 밥 먹여주느냐는 정권이니, 교과서 집필자나 출판사의 자세가 불만스러웠을지 모른다. 그렇게 알아서 기라고 윽박질렀지만, 집필진은 따르지 않았다. 학교장의 목줄을 쥔 시도 교육감을 동원해 특정 교과서 퇴출을 강제했지만, 자칭 자율화 정부의 이름에 먹칠만 했을 뿐 효과는 신통찮아 보인다. 그러니 아무런 권한도 없는 정부가 연내 사실상 전면 개정, 내년 새 교과서 배포를 단언했을 것이다. 이런 서슬 앞에서, 국책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 등의 연구자들이 어떤 검토 의견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지금 유통되는 근현대사 교과서 6종은 이미 정부가 정한 검정 절차에 따라 교과서로 승인받은 것들이다. 눈엣가시로 꼽히지만, 일선 학교에서 가장 선호하는 특정 출판사 교과서의 경우 교과부가 정한 검정기준 통과는 물론 2004년 역사학계의 검증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이런 교과서의 뼈대를 바꾸라는 것은, 사실 제 얼굴에 침 뱉기일 뿐더러 집필진에게는 학자적 양심을 포기하라는 요구다. 이게 정부가 할 일일까.

더욱 한심한 것은 이들이 교과서 개정 논란을 통해 도발하고 있는 이념논쟁의 수준이다. 이들의 요구를 요약하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인권을 유린한 자들을 칭송하고, 한반도를 병참기지로 삼고 한국인을 전쟁 노예로 삼았던 일제를 근대화의 조력자로 미화하라는 것이다. 사실과 관계없이. 이런 칭송과 미화를 거부하면 좌 편향이라고 단죄한다. 그러면 도대체 이들이 추구하고 꿈꾸는 세상은 무엇일까. 반민주·전제국가가 이념이고, 식민지·독재체제가 이상인가.

설사 그런 해괴한 이상과 이념을 가졌다 해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판단이나 평가는 학계에 맡기는 게 도리다. 너무 유치한 수준이다 보니 권력의 힘이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권의 입김이 학문의 영역을 좌우하는 순간, 진리와 자유는 질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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