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25 20:54
수정 : 2008.09.25 20:54
사설
북한이 핵문제를 놓고 벼랑 끝 전술에 기댄 것은 6자 회담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북한이 그제 국제원자력기구에 통보한 대로 영변 핵 재처리 시설을 곧 다시 가동한다면, 6자 회담은 핵시설 동결 이전으로 한참 후퇴하는 꼴이 된다. 더구나 지금 한국과 미국, 중국 등 모든 참가국이 검증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풀고자 애쓰는 중이잖은가.
북한은 벼랑 끝 전술이 미국의 입장 완화로 이어지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내년 초 출범할 새로운 미국 정부와 협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큰 착각이다. 6자 회담 전체 과정이 한번 무너지면 복원하기가 쉽지 않거니와 새 미국 정부가 이전과 비슷한 협상 기조를 유지할지도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의 핵시설 재가동을 지지할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북한이 ‘내 갈 길을 간다’는 태도를 강화할수록 국제적 고립 또한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핵시설 검증 갈등은 충분히 협상을 통해 풀 수 있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이와 관련해 “서류작업, 인터뷰, 현장방문 등 세 가지 검증요소에 대해서는 이미 합의했다”고 말했다. “영변 이외 시설을 확인하고 방문할 수 있는 수단 확보”만 남았다는 것이다. 미국이 영변 이외 시설 사찰에 집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라늄 핵 의혹 등을 풀기 위해서다. 그런데 북한이 이에 동의할 경우 군 부대까지 사찰단에 개방해야 하는 큰 부담을 지게 된다. 게다가 우라늄 농축 시설은 존재 자체가 불확실한 터여서, 사찰 대상을 특정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현실적인 해결책은 미국이 영변 이외 사찰 요구를 보류하고 영변 핵시설에 집중하는 것이다. 대신 영변 이외 핵시설 활동에 대한 확실한 정보가 있을 경우에는 사찰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둬야 할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미국이 끝까지 영변 이외 사찰을 요구한다면 과거 미국-이라크 사이에서 벌어졌던 극심한 사찰 갈등이 되풀이될 수 있다. 이래서는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
북한과 미국 모두 유연성을 보이지 않으면 협상이 진전될 수 없다. 북한은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하고, 미국은 대통령 선거 등의 국내정치적 고려에서 벗어나 결단해야 한다. 6자 회담은 이번보다 훨씬 어려운 사안도 협상으로 해결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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