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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9.26 20:58 수정 : 2008.09.26 20:58

사설

정부가 도심에서 벗어난 곳에 시위구역을 지정하겠다고 한다. 엊그제 이명박 대통령이 주관한 회의에서 경찰이 보고한 국가 경쟁력 강화 방안이다. 경쟁력을 높이고자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제한하겠다는 것인데, 그 발상이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을 위해 언론 출판 및 집회 시위의 자유를 박탈했던 유신체제를 연상시킨다.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될 정책을 내놓고 경쟁력 강화 운운하고 있으니, 정부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럽다.

자신도 멋쩍었던지 경찰 관계자는 도심에서 집회의 자유도 보장된다고 한 발 뺐다고 한다. 하지만 시위구역이 지정될 경우, 사실상 허가권을 행사하는 경찰이 이를 빌미로 도심 시위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는 자명하다. 일반 시민이나 이해집단의 눈총과 반발도 기대할 수 있으니, 양수겸장이다. 박정희 정권이야 솔직하기나 했지, 이 정부의 뒤통수 치기는 역겹다.

헌법은 집회 시위의 자유를 언론 출판의 자유와 동등하게 명시해(21조), 다른 헌법적 권리보다 우월적인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그것은 집회 시위가 다원적 열린 사회를 위한 기본 조건인 까닭도 있지만, 대의 민주주의의 결함을 보완해 주는 구실을 하는 탓이 크다. 국회나 행정부 혹은 언론이 외면하고 간과하는 약자의 이해와 관심을 드러내, 건강한 여론을 형성시키고 정책 결정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자율적인 시민사회를 형성하는 기능도 한다.

집회나 시위는 그 속성상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대중이 모이고 소통하는 장소, 또는 자신의 의견이 가장 잘 전달될 수 있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장소 선택권은 집회 시위의 자유의 핵심적인 요소를 구성하는 것이다. 경찰이 외딴곳으로 장소를 제한하는 것은 이 자유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경찰은 교통 혼잡이나 물질적 피해 등을 거론하지만, 이는 민주주의 실천에 드는 사회적 필요비용이다.

국가 경쟁력만 봐도 그렇다. 민주주의와 인권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천할 때 국가 이미지는 좋아지고, 그래야 국가 브랜드 파워나 경쟁력도 높아진다. 파시스트 전체주의 국가 이미지로는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면치 못한다. 정부는 유치한 말장난일랑 그만두고, 얼마나 신뢰와 정당성을 잃었으면 집회를 무서워하는지 돌아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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