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26 20:59
수정 : 2008.09.26 20:59
사설
이용훈 대법원장이 어제 사법 60돌 기념식에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에 대해 “죄송하다”며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 질서의 수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했다”는 대법원장의 고백은, 부끄러운 과거사에 대한 사법부의 자기반성이다. 늦었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사법부의 굴종 과거사는 사과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과거 청산의 실천이 따라야 한다. 정권의 국민 기본권 유린을 방조한 판결, 적법절차는커녕 고문과 조작을 눈감은 판결 하나하나에 억울한 희생자들이 있다. 그런 판결에 움츠러들었던 우리 사회 전체가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 피해를 구제하는 게 과거 청산의 첫걸음이다.
그런 점에서 사법부가 내놓은 해결책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대법원장은 법적 안정성 등을 이유로, 이들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는 길은 재심절차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현행법의 엄격한 재심 요건을 완화할 별도의 절차나 적극적인 법해석 등 재심을 쉽게 할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따로 과거사위 등을 꾸려 재심의 길을 열어주겠다는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는 몇십 년 지난 조작 사건의 피해자들이 재심을 받아볼 기회는 사실상 사라진다.
법원은 또, 고문 등이 문제돼 재심이 예상되는 사건들을 추려놓고도 이들 사건의 판결 하나하나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나 반성 대신 뭉뚱그려 반성의 뜻을 밝히는 데 그치기로 했다고 한다. 구체적 노력과 대책 없는 반성과 사과는 공허하다. 그런 자세로는 ‘사법 정의의 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
대법원장은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말로만 가능한 건 아닐 터이다. “국민과 소통하고 섬기는” 것과 함께, 정권의 압력에 굴했던 “과거의 불행한 일들을 교훈 삼아 법관의 양심과 사법의 독립을 굳게 지켜” 공정하고 올곧은 재판을 하는 게 그 첫걸음이다.
그런 다짐을 하는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사법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는 괴이한 주장을 폈다. 인기와 여론에 휩쓸리지 말라는 말과 함께 ‘법질서’를 유독 강조했으니, 그 뜻하는 바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사법부로서는 과거 겪었던 정권의 압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런 압박에 휘둘린다면 오늘 반성한 굴종의 과거사는 내일 또다시 되풀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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