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29 21:36
수정 : 2008.09.29 21:36
사설
이명박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어제 정상회담을 열고 두 나라 관계를 건설적 동반자에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 격상시키기로 했다. 경제·외교·안보·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논의 수준을 높이고 협력을 강화한다는 뜻이다. 옛소련 해체 이후 한반도에서 상당히 뒷전으로 밀렸던 러시아가 다시 다가오는 느낌이다.
합의 내용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우리나라가 이르면 2015년부터 해마다 750만톤의 천연가스를 30년 동안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 연간 수요의 20%에 해당하는 많은 분량이다. 러시아가 극동·시베리아 지역을 발전시키려는 국가전략에 따라 먼저 제안한 사업이지만, 우리나라도 안정적인 에너지 수입처 확보와 더불어 관련 개발 사업에 참여할 수 있어 큰 이익이 된다. 계획대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을 가로지르는 가스관 공사가 순조롭게 이뤄지면 한반도·동북아 경제권 형성과 통일기반 조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
러시아산 가스 도입은 1990년 9월 두 나라 수교 이후 여러 차례 추진됐으나 무산됐다. 러시아 정부가 외국기업의 에너지 자원 보유를 최대한 억제하고 국가통제를 강화한 탓이다. 천연가스 대국인 러시아가 유럽에 이어 아시아·태평양 나라들에도 최대 가스 공급국이 된다면 국제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침공했을 때 유럽 나라들은 가스 공급 중단을 우려해 미국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다.
러시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전 대통령 시절부터 아시아·태평양 국가를 추구해 온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6자 회담 등 안보 관련 논의에서도 적극적 모습을 보인다. 러시아의 이런 태도는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려는 경향과 맞물려 때때로 미묘한 파장을 낳는다. 이런 상황에서 한-러 협력 강화는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동북아 평화구조 정착 등에서 러시아의 창의적 구실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회담으로 이명박 정부의 출범 초기 4강 외교가 일단락됐다. 여전히 불확실한 대목이 적잖은 미국·일본·중국과의 관계에 비해 한-러 관계는 상대적으로 순항하는 모습이다. 여기에는 두 나라 사이에 직접적인 안보 이익 충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이제 전략적 동반자에 상응하는 실질 협력을 이뤄나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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