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0.03 20:15
수정 : 2008.10.03 20:15
사설
지난 2일 대한적십자사 총재에 유종하 전 외무장관이 선출됐다. 유 전 장관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외무장관 시절 대북 강경정책을 주도했던 인물로, 인도주의를 우선하는 적십자사 지향과는 잘 어울리질 않는다. 그런 그가 취임 10개월밖에 안 된 전임 총재를 밀어내고 새 총재에 뽑힌 건, 정부 입김이 작용한 ‘낙하산 인사’로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더욱 눈길을 끄는 건 개천절 연휴 바로 전날에 인사가 이뤄진 점이다. 휴일 직전에 낙하산 인사를 발표한 건 처음이 아니다. 공안통으로 유명한 정형근 전 한나라당 의원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에 임명한 게 지난달 19일 금요일이었다. 추석 연휴 전날인 지난 12일엔 한국농촌공사 사장(홍문표 전 한나라당 의원)과 마사회장(김광원 전 한나라당 의원) 인사가 발표됐다. 그때 농림수산식품부는 신문들의 1판 마감시간이 지난 저녁 6시쯤에야 기자들에게 인사 보도자료를 돌렸다. 해당 부처들은 “인사절차를 진행하다 보니 그렇게 됐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뉴스 관심도가 떨어지는 휴일 직전에 발표함으로써 비판 여론을 피해가자는 꼼수로 읽힌다.
현 정권은 출범 초기에 인사 실패로 호된 곤욕을 치렀다. 그런데도 인사를 제대로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발표시점을 조정해 국민의 눈길을 잠시 피하려고만 하니 영 볼썽사납다. 그렇게 발표시점을 고민해야 할 인사라면, 아예 처음부터 밀어붙이지 않는 게 정도다. 정권 핵심인사는 “선거 때 도움을 준 사람들이 스스로 (자리를 차지) 하겠다고 뛰는데, 이걸 막기가 쉽지 않다”고 나름의 어려움을 호소하지만, 결국 인사의 최종 책임은 청와대가 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 철학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정부 곳곳에 포진해야 정책 추진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줄기차게 ‘낙하산 인사’를 비판했던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니 금세 태도를 바꾸는 건 너무 치졸하다. 더구나 아무리 ‘낙하산’이라도 능력과 전문성은 봐야 하는데, 그런 최소한의 원칙마저 무시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부에 했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국익은 안중에도 없고 대통령과 친한 사람들, 대통령 마음에 걸리는 사람들을 잘먹고 잘살게 해주겠다는 발상”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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