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0.03 20:16
수정 : 2008.10.03 23:40
사설
검증을 둘러싼 갈등으로 고비를 맞았던 북한 핵 문제가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 협상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듯하다. 6자 회담 전체가 좌초할 위기는 일단 넘긴 것으로 보인다. 힐 차관보는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물론 박의춘 외무상, 리찬복 판문점 대표부 대표 등을 두루 만났다.
사흘간의 방북을 마치고 어제 서울로 돌아온 힐 차관보와 소식통의 말을 종합하면, 해법의 기본 구도는 영변 핵 시설·활동과 그외 시설·활동의 분리에 있다. 우선 북한이 지난 6월 신고한 영변 핵 시설·활동에 대한 검증 계획을 6자 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내면, 미국이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을 잠정적으로 해제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영변 핵 시설 불능화와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대북 에너지 지원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2단계는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6자 회담의 상당한 성과다.
물론 영변 이외 핵 시설·활동을 어떻게 할지가 과제로 남는다. 여기에도 인내심 있는 협상이 필요하다. 미국이 애초 요구한 검증안은 북한에 대한 철저한 불신에 기초해 북한이 검증단의 모든 요구에 응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한 핵 전문가의 지적대로 “패전국이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다. 미국이 이런 수준의 검증을 계속 요구한다면 협상이 잘 안 될 수 있다. 미국 등 회담 참가국은 근거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대상을 압축하고, 북한은 의혹 해소 방안 마련에 적극 협력해야 할 것이다.
이번 핵 검증 갈등은 신뢰의 문제가 6자 회담 진전의 열쇠임을 보여준다. 미국이 이른바 ‘국제적 기준’의 검증을 북한에 요구한 것이나 북한이 핵 시설 재가동으로 대응한 것이나 모두 서로에 대한 불신에 기초하고 있다. 이렇게 불신이 충돌하는 구도를 만들어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따라서 신뢰 수준을 높일 수 있는 평화체제 논의 등을 최대한 빨리 시작할 필요가 있다. 힐 차관보와 리찬복 대표의 만남이 주목되는 까닭이다.
6자 회담은 완전한 핵 폐기와 북-미 및 북-일 관계 정상화, 평화체제 수립 등을 최종 목표로 한다. 그만큼 가야 할 길이 멀다. 항상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분명한 목표의식과 현실성 있는 실천방안이다. 단계마다 성과를 내야 하지만,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그래서 행동 대 행동 원칙의 준수가 더 중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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