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0.08 20:58
수정 : 2008.10.08 20:58
사설
역사학계가 어제 이 정권의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압력에 대해 집단행동에 나섰다. 고대·중세사학회까지 포함해 국내의 거의 모든 역사 관련 학회가 참여했다. 전례 없는 일이다. 학문과 역사를 정권에 예속시키려는 이 정권의 시도에 대한 학계의 우려와 공분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준다.
이들을 상아탑 밖으로 끌어낸 것은 학문 특히 역사학의 위기였다. 이 정부는 과거의 독재정권처럼 역사교육을 통치나 정권유지 혹은 우민화의 방편으로 이용하려 들었다. 출범하자마자 관변학자 관변언론을 동원해 역사 교과서의 내용에 대해 이념공세를 퍼부었다. 문외한인 관변단체까지 동원해 마녀사냥식으로 학계를 위협하고, 수정을 압박했다. 지금까지 역사 연구의 결과물에 대한 부정이었고, 앞으로 역사를 통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학계는 이미 근·현대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그들 나름의 견해를 거듭 밝혔던 터였다. 2004년 한나라당과 그 주변 세력에 의해 이념 시비가 일자, 국사편찬위원회는 ‘교육부가 고시한 서술지침과 서술방향에 어긋남이 없다’는 검증 결과를 발표했다. 그 지침과 방향은 지금 한나라당 정권의 전신인 김영삼 정부가 고시한 것이었다. 역사학계도 공개검증을 통해 문제의 특정 교과서 역시 ‘7차 교육과정에 충실했다’는 공동의견서를 냈다.
그럼에도 이 정권은 학계에 학문적 변절을 거듭 요구했다. 지난번 판단을 뒤집고 이념적 편향을 인정하라고 강권하는가 하면, 경제인단체나 비전공 학자들이 내놓은 수정안을 수용하도록 강제했다. 역사를 정치권력의 시녀로 만들겠다는 생각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짓이었다. 게다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정권이 바뀌면 교과서도 바뀔 수 있다고 발언하는 등, 학문의 자유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유린하는 발언과 시도가 잇따랐다. 검인정체제를 시대착오적 국정체제로 되돌리려는 의지까지 엿보였다. 국정체제 아래선 역사 연구의 자율성과 역사 교육의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학계로선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제 이 정권은 선택해야 한다. 현대판 분서갱유를 통해 기존의 역사책과 역사학자들을 모두 없애거나, 아니면 헌법에 보장된 학문의 자율성, 교육의 중립성을 인정하거나.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은 후자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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