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0.10 19:57
수정 : 2008.10.10 19:57
사설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가 임박한 듯하다. 해제 조건으로 미국이 요구해 온 핵 검증 방안은 신고 시설과 미신고 시설을 나누는 분리검증으로 타협됐다고 한다. 북한이 이미 신고한 영변 핵시설에 우선 집중하고 우라늄 농축 및 핵 확산 의혹 등을 풀기 위한 미신고 시설 검증은 이후 협의하는 방식이다. 현실적 선택이다.
사실 핵 검증 갈등은 애초부터 이런 식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몇 달 우여곡절을 겪은 주된 원인은 미국이 너무 엄격한 검증안을 요구한 데 있다. 미국은 플루토늄 생산, 우라늄 농축, 핵무기, 무기 생산 및 실험, 핵 확산 활동 등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내 모든 시설·문서·인력 등을 공개하라고 북한에 압박했다. ‘패전국이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라는 지적까지 나온 까닭이다. 여기에는 미국의 국내 정치적 측면이 크게 작용했다. 이번 기회에 북한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강경파의 압력을 부시 행정부가 크게 의식한 것이다.
테러지원국 해제 조처가 취해지면 6자 회담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먼저 할 일은 북한이 핵시설 재가동을 중단하고 불능화 과정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는 것이다. 검증을 제대로 시행하기 위한 세부 논의도 구체화해야 한다. 대북 에너지 지원 등 상응 조처가 성실하게 이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 핵 폐기 단계에 대한 준비다. 부시 행정부 임기 안에 본격적인 이행은 어렵다 하더라도 다음 단계의 틀을 짜고 동력을 확충하는 일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이제 남북 관계 개선이 더 절실해졌다. 지금과 같은 경색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6자 회담을 비롯해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국제 협상에서 우리 역할이 더 위축되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머잖아 시작될 평화체제 논의는 남북을 핵심 주체로 하고 있어 남북 관계 개선과 동전의 앞뒷면을 이룬다. 남북 관계를 푸는 출발점은 말할 것도 없이 10·4 정상선언 및 6·15 공동선언 이행 의지를 분명히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6자 회담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번 검증 갈등에서 봤듯이 회담을 진전시키는 힘은 신의·성실과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기초한 꾸준한 협상에 있다. 우리 정부는 그 과정에서 주도적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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