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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10 19:58 수정 : 2008.10.10 19:58

사설

법원이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에서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증여 혐의와 삼성에스디에스(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이 이런 결론에 이른 논리는 수긍하기 어렵다. 항소심 법원은 문제된 두 회사가 자본 조달이라는 정당한 목적이 아니라 경영지배권 이전과 조세 회피 목적으로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를 헐값으로 발행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 자체로 상법의 기본 원칙에서 벗어난 행위다. 법원은 그러면서도 이는 사적 자치일 뿐이며 회사에 대한 손해는 없으므로, 민사로는 몰라도 현행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법을 어겼지만 처벌은 할 수 없다는 기묘한 주장이다. 법리대로라지만, 재벌 봐주기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사적 자치가 공정하게 작동되도록 해야 할 법원이 그 소임을 내팽개친 것이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판결은 불법 자본거래를 처벌할 소지를 가로막을 수 있어 더욱 위험하다. 항소심은 회사 경영자들이 전환사채 등을 적정가로 발행해 그만큼의 자금이 회사에 들어오게 할 의무는 없다며, 이는 제3자 배정 방식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에 대한 판결 등 법원의 기존 판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다. 제3자 배정 방식에선 적정가를 적용해야 한다는 점까지 부인한 것이니, 배임죄를 처벌할 근거까지 흔들게 된다.

이사회 추인을 거치고 주주들이 문제 삼지 않으면 사실상 처벌을 할 수 없다는 판결 논리도 문제다. 문제된 두 회사에선 주주대표소송이 가능할 정도의 지분을 지닌 일반 소액주주도 없다. 그런 식이라면 상당수 비상장회사에선 아무런 제재 없이 잘못된 자본거래가 벌어질 수 있게 된다. 법원이 그런 무법상태를 방조하자고 길을 열어주는 건 말이 안 된다.

항소심 법원은 판결에서 “실정법상으로는 무죄를 선고하지만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큰 행위인 만큼, 국가 발전에 헌신해 달라”고 당부했다. 억지스런 법 논리에 변명처럼 덧붙인 말이지만, 삼성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무죄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삼성이 이를 모든 잘못된 행위에 대한 면죄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그보다는 이를 계기로 낡은 구조와 관행을 반성하고, 변화와 쇄신을 모색하는 것이 한국 대표기업인 삼성의 당연한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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