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0.15 19:44
수정 : 2008.10.15 19:44
사설
기륭전자 노조원들이 이 회사의 부당 노동행위를 고발하러 어제 주거래 업체인 시리우스가 있는 미국으로 날아갔다. 시리우스가 기륭으로부터 납품받는 단파라디오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착취하면서 만들어낸 것임을 알리고 문제 해결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노조 대표단은 미국 노동운동 단체들과 연대해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94일 동안의 단식, 그리고 1150일이 넘는 투쟁에도 정규직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기에 이제는 외국의 힘까지 빌려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이며 선진화를 내거는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울음에 우리 사회는 무심하기 짝이 없다. 철탑 고공농성, 단식 등 목숨을 건 투쟁이 이어져도 기껏 회사가 보이는 반응은 시늉 정도인 대화다. 친기업을 내세우는 정부가 나몰라라 하기 때문이다. 아니, 나몰라라 정도가 아니다. 어제 아침 농성장으로 사용하던 컨테이너 박스와 천막을 철거하는 회사 쪽에 항의하는 기륭전자 노조원들에게 경찰이 “폭력행위 하면 연행하겠다”고 협박한 것에서 보듯이 오히려 노동문제를 일으킨 회사를 두둔한다. 주무부서인 노동부가 움직이고 있다는 흔적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노동현실에 눈감고 만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 사회의 안정은 불가능하다.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 나서 분쟁이 빚어지고 있는 사업장에서 노사가 머리를 맞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하고 노사는 신의로 대화에 임해야 한다. 기륭의 노사도 노조 대표단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 세차례 교섭을 했다. 그러나 협력회사를 세워 고용하겠다는 사용자 쪽과 회사가 법률적 책임을 지는 자회사를 통한 해결을 주장하는 노조의 대립으로 결렬됐다. 그동안 쌓인 노조원들의 불신을 고려할 때 사쪽의 제안은 현실성이 없다. 기륭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노사분규로 수출시장 점유율이 떨어지는 등 손해를 봤다고 밝히며 그 책임을 노조에 돌렸다. 그러나 노조의 투쟁은 불법파견 업체를 통해 착취를 일삼았던 사쪽에 원인을 두고 있다. 노동착취 기업이란 오명을 벗지 않고는 세계시장에서 대접받기 어렵다. 부도덕한 기업의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에 호응하는 소비자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