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0.16 20:18
수정 : 2008.10.16 20:18
사설
북한 <로동신문>이 어제 우리 정부에 6·15 공동선언 및 10·4 정상선언 수용을 압박하며 “남북관계의 전면 차단을 비롯한 중대결단”을 경고하는 이례적인 글을 실었다. 신문 논평원 이름으로 돼 있지만 사실상 북쪽 당국의 공식 입장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경색된 남북관계가 새로운 고비를 향해 치닫는 분위기다.
북쪽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우선 미국이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는 등 북-미 관계가 비교적 순조롭다. 꼭 통미봉남 전술이 아니더라도 남쪽 정부와의 기싸움에서 유리한 국면에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북한 붕괴론이나 흡수통일을 전제로 하는 남쪽의 여러 움직임에 제동을 걸 목적도 있는 듯하다. 사실 북쪽으로서는 자신의 체제를 부정하는 남쪽 전단이 계속 넘어오고 급변사태 논의가 이어지는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건강이상설이 떠도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력을 안팎에 과시하려는 뜻도 있음 직하다.
이런 이유 가운데 일부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북쪽이 일부러 긴장을 고조시켜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괴뢰정권’ ‘역적패당’ ‘파쇼’ 등의 유치하고 상투적인 용어는 논외로 하더라도, 남북관계 단절을 위협 수단으로 삼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위험하다. 북쪽 ‘체제의 존엄성’을 인정받으려면 남쪽 체제의 존엄성부터 인정해야 하며, 그러자면 남쪽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논리와 행동을 보여야 한다.
그럼에도, 남북관계 경색의 주된 원인이 남쪽 정부의 6·15 및 10·4 선언 무시에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사태를 풀 열쇠는 남쪽 정부 손에 있다는 얘기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과 대북 전단 살포 등이 현안으로 불거졌지만, 이들 문제는 남북관계의 큰 흐름이 잡히면 어렵지 않게 풀릴 수 있다. 거꾸로 정부가 개별 사안에 매몰되거나 무작정 북쪽이 굽히고 들어오기를 기다린다면 파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남북 두루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쪽은 6·15 및 10·4 선언 이행 의지 등을 분명히하고, 북쪽은 도발적 태도를 버리고 진지하게 대화에 나서야 한다. 대결 의식에 치우쳐 인내심 싸움을 하다가 자칫 선택의 분기점을 지나쳐 버리면 양쪽 다 운신의 폭이 극도로 좁아지게 된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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