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0.17 21:02
수정 : 2008.10.17 21:02
사설
교육과학기술부가 결국 근현대사 교과서 직권 수정에 들어갔다. 직제에도 없는 이른바 전문가협의회란 걸 급조해 수정 사항을 확정하는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절차와 관례는 물론 학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짓밟는 행태가 뒷골목 양아치만도 못하다. 나라의 학문과 교육을 책임진 집단이 이러하니, 우리의 학문과 교육이 앞으로 얼마나 퇴행할 것인지 암담하기만 하다.
이 정권과 교과부가 교과서 수정을 위해 해 온 행태는 그야말로 강짜와 억지의 연속이었다. 시비의 대상이 돼 온 근현대사 교과서들은, 1997년 이 정권의 뿌리인 김영삼 정권 때 확정한 준거안과 서술방향에 따라 집필된 것들이었다. 검인정이라고 하지만 준거와 서술방향이 너무 구체적이고 상세해, 당시 학계나 교육계에선 검인정의 장점인 관점과 서술의 다양성을 살리기 힘든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까다로웠다. 이 정권이 문제삼는 이승만·박정희 정권이나 6·25 전쟁 등에 대한 기술 역시 이 기준에 따른 것이었다. 이 정권은 이념전쟁 도발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저의 뿌리마저 친북좌파로 매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교과부는 2002년 이들 교과서를 검인정 교과서로 인증해준 당사자다. 한나라당과 뉴라이트 계열이 교과서에 시비를 걸어왔을 때, 당시 교육부는 자신 있게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는 물론 역사학계에 검증을 의뢰했다. 물론 그 결과는 문제없음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갑자기 국가 정통성 부정 운운하며 제 얼굴에 침 뱉는 짓을 막무가내로 하고 있다. 교과서 출판사와 필자의 손목을 비틀기도 하고, 정부의 통제 아래 있는 국편에 부역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역사학계 및 역사교육계의 대대적인 저항에 부닥쳤지만, 교과부는 2년 전 자신의 검토 결과를 일부 부정하는 국편의 보고서를 직권 수정의 핑계로 삼았다.
이제 남은 절차는, 수정 사항을 받아들이도록 출판사의 손목을 다시 비트는 일이다. 내후년 다시 교과서 검정 절차를 밟아야 하는 출판사로선 거부하기 어렵다. 이미 몇몇 주요 필자들은 출판사의 어려움을 고려해 손을 뗐거나, 뗄 채비를 하고 있다. 남은 교과서 필자는 자기검열을 피하기 어렵다. 근현대사 교과서의 검인정 체제는 허울뿐이다. 자유세계에 둘도 없는 사실상 ‘국정 체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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