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0.20 20:59
수정 : 2008.10.20 20:59
사설
법조계의 고질적 병폐인 ‘전관예우’ 문제의 심각성이 거듭 확인됐다. 지난해 하반기 형사사건을 가장 많이 수임한 변호사 20명 가운데 17명이 마지막으로 근무한 법원·검찰청 관할 지역에서 개업한 이들이었다고 한다. 또,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고등법원장이나 지방법원장을 물러난 변호사 상당수가 퇴직한 날로부터 1년 안에 자신이 마지막으로 지휘했던 법원의 사건을 맡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가운데는 법원장으로 있을 때 진행되던 사건을 변호사로 맡는, 낯뜨거운 일도 있었다. 이런 일이 관행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되어선 안 된다.
‘전관예우’의 해악은 이미 분명하다. 얼마 전까지 현직 판·검사였던 변호사가 맡았다고 해서 양형이나 기소 등에서 유리한 결정을 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공정하고 적법한 재판을 위협하는 일이 된다. 국민의 사법에 대한 불신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전관예우다. 그런 인식이 확산되고 굳어지면 헌정의 근간인 법치주의까지 흔들리게 된다. ‘전관’이 사건을 싹쓸이하는 잘못된 상술은 사건브로커의 농간과 함께 변호사 시장을 왜곡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그동안 전관예우를 막으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전관 변호사와 6개월 이상 같이 근무한 재판장에게는 해당 사건을 배당하지 않도록 하고, 주요 사건에 대한 양형기준을 만들어 전관의 개입 소지를 줄이려 했다. 지난해에는 법조윤리협의회를 꾸려 전관 변호사에게 퇴직 후 2년 동안의 수임자료를 제출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번에 드러난 것처럼 그런 조처만으론 전관예우를 근본적으로 없애기 어렵다. 강제력 없이 징계·수사를 의뢰하는 것 정도론 실효성 있는 대처가 가능하지도 않다. 법조윤리협의회 발족도 사법제도 개혁 과정에서 법조계의 현실론을 받아들인 미봉책인 터이다.
전관예우 문제를 해결하자면 공직퇴임 변호사의 개업지 제한이나 형사사건 수임 제한 등의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이런 방안이 직업 선택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으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일리가 없진 않지만, 그보다는 국민이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온전히 행사하는 게 더 중요하다. 전관예우와 같은 잘못된 관행으로 재판이나 법률적 결정이 왜곡되는 일이 계속된다면 더 큰 헌법적 위험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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