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0.23 20:19
수정 : 2008.10.23 20:19
사설
국방부가 이른바 ‘불온서적’을 지정한 것에 대해 군 법무관 7명이 기본권 침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상부의 조처나 결정을 두고 군에서 다른 의견이 공개적으로 표출된 것은 유례가 드물다. 이 때문에 군 고위층 등 일부에서는 항명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젊은 장교들이 헌법소원을 낸 것은 군의 민주화와 성숙을 보여주는 것이지 항명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항명이라 함은 지휘관 등 상부의 명령 이행을 거부하는 것을 뜻한다. 불온서적 지정 행위가 과연 명령인지 또 명령이면 어떤 경우든 무조건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법무관들의 헌법소원 제기를 그런 시각에서 보는 것은 잘못이다. 명령 불이행이 아니라 정당한 절차에 따른 이의 제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불온서적 지정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상부의 조처를 무시한 채 ‘불온서적’을 영내로 반입해 읽겠다는 게 아니다. 단지 국방부 조처의 타당성에 대한 법적인 판단을 구하겠다는 것이다.
어느 조직이든 이런 방식의 문제 제기는 정당하다. 군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합법적인 문제 제기를 두고 집단행동이니 군인 복무규율에 어긋나느니 하면서 징계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과잉 행동이다. 입을 강제로 틀어막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더구나 지난번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이었는지는 새삼 다시 상기할 필요조차 없다. 문제가 된 서적들의 내용으로 보나 특정 서적을 장병에게 읽혀서는 곤란하다는 발상으로 보나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은 부당한 일이라고 모든 언론이 비판한 바 있다. 심지어 여당 의원들까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불온서적 지정을 철회하기는커녕 ‘부대 바깥에서 그런 책을 읽는 것은 상관하지 않겠지만 영내에서는 허용할 수 없다’는 시대착오적 태도를 고집해 왔다. 국방부의 독선적인 태도야말로 젊은 장교들이 헌법소원을 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원인이다.
국방부는 괜한 고집을 더 부리지 말고, 당장 불온서적 지정부터 철회해야 한다. 무조건 지시만 따른다고 ‘강한 군대’가 될 수 없다. 엄한 훈련뿐 아니라 건전한 정신과 지식으로 무장하고, 국민과 하나 될 때 가능하다. 교육과학기술부조차 양서로 추천하는 책을 금하고, 이에 대한 정당한 이의 제기를 징계해서는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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