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0.26 20:19
수정 : 2008.10.26 20:19
사설
휴일인 어제 오전, 대통령 주재로 긴급 경제장관회의가 열렸다. 시장금리를 안정시키고 기업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 대책 등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대책들이 위기를 진정시킬 수 있을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정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위기 대책을 발표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시장은 정부 기대와 전혀 다르게 반응했고, 그때마다 정부는 허둥지둥 후속대책을 마련하기에 바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에 대한 뼈저린 반성을 하지 않고는 긴급회의를 백날 열어 봤자 아무 소용 없다.
먼저, 정책 당국자들의 안이하고 무능한 상황 인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준 의장의 말대로 “지금 위기는 100년에 한 번 나타날 신용 쓰나미”다. 그리고 “실업 증가와 집값 불안정으로 사정은 더 나빠질 것”이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내년이면 위기가 해소될 것처럼 낙관론으로 일관했다. 경제위기 가능성이 제기될 때마다 당국자들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며,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정부 인식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의 상황 인식이 이렇게 안이하다 보니 대책 마련 시기도 한 박자 늦고, 대책의 강도도 시장의 기대 수준에 못 미쳤다. 그런 대책은 당연히 시장에서 외면받고, 시장의 내성만 키워주게 된다. 위기국면에서는 시장이 예상하는 시점보다 일찍, 그리고 시장의 기대 수준보다 과감하게 행동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미국이나 영국 정부 등은 은행 국유화, 기업어음 직접 매입 등 시장이 전혀 예상치 못한 조처들을 전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우리는 여건이 다르다고 변명했지만 결국 은행 외화차입 지급보증 등 시차를 두고 뒤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늘 뒷북만 치다 보니 효과는 보지 못하고 위기는 깊어진다.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책 당국자들에 대한 신뢰의 붕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경제대통령’이란 이름을 잃은 지 오래다. “펀드라도 사겠다”고 했다가 한 달여 만에 “지금은 아이엠에프 때보다 어렵다”는 등 국민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강만수 경제팀에 대한 시장의 불신은 이제 증오로 치닫고 있다. 정책 당국자들은 대외 여건이 안 좋아 위기 극복이 힘들다는 핑계를 대고, 현재의 경제난을 과거 정권 책임으로 돌리는 ‘남 탓 타령’을 하고 있다. 그럴수록 국민의 신뢰는 점점 멀어진다.
이 정부의 경제위기 타개 능력을 더는 믿지 못하겠다. 대통령은 제발 시장을 어지럽히는 엉뚱한 발언을 그만 하고, 현 경제팀을 하루빨리 교체하기 바란다. 경제팀을 바꾸더라도 급한 불은 끄고 할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위기는 한숨 돌린다고 진정될 상황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그 끝이 어딘지도 모르는 컴컴한 터널로 들어가기 전에 출구를 제대로 찾아가는 조타수가 필요하다. 어둠 속에서 좌충우돌할 현 경제팀에 국민의 삶을 통째로 맡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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