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0.27 20:14
수정 : 2008.10.27 20:14
사설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새해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제적인 경제위기를 맞아 초당적인 협력과 국민의 동참을 호소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연설은 설득력은커녕 매우 공허했다. 문제에 대한 진단이나 인식이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 있는데다 말과 행동이 다른 자기 모순적 모습이 곳곳에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이 대통령은 현재의 상황을 “한국에 외환위기는 없다”며 “문제는 오히려 심리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가 심리적 상태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만 강조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지금 대외 신인도를 나타내는 신용부도 스와프(CDS) 프리미엄이 타이나 말레이시아보다 높다. 이는 심리적 요인이 아니라 오락가락한 환율 정책 등 정부의 잘못 때문이다.
둘째, 금융규제 완화 등 실패로 드러난 정책을 그대로 밀어붙이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도 무모한 발상이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지난 수십 년 동안 금융에 대한 규제를 과도하게 제거했던 결과라는 것이 세계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금융 규제를 다시 강화하는 미국과 유럽의 추세를 보면서도 이 대통령은 “금융산업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고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타깝고 답답한 해법이다.
셋째, 종부세 완화 등을 통한 대규모 감세 방침을 고수하는 것도 위기 국면을 탈출하는 전략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대규모 감세조처는 복지정책 축소와 이로 인해 빈부격차를 확대시킬 우려가 크기 때문에 경제가 활황일 때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정책이다. 경제성장 둔화에 따른 세입 감소가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이 정부의 감세는 1% 부자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
넷째, 정부의 친기업 정책과 수도권 규제 완화, 편향적인 종교정책, 언론 장악 등이 사회 갈등을 키운 원인임에도 이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없이 각 부분의 상생과 협력을 요구했다. 국민의 동참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진심이 있는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초당적인 협력도 마찬가지다. 사정기관을 동원해 이전 정권과 야권 인사 뒤 캐기를 하면서 “정파의 차이를 넘자”고 하는 것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 국력 결집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이 대통령의 인식과 정책 기조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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